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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22. 2023

상주 은모래비치

남해를 돌다

넷플릭스 시리즈 “먹보와 털보” 남해 편을 보면서 남해에 꼭 가보리라 마음먹은 길을 어제 다녀왔다. 독일마을은 생각만큼 독일 같지 않았지만 수제 소시지와 맥주만으로도 본전은 톡톡히 뽑은 것 같다. 바이크 갤러리의 할리 데이비슨도 훌륭했고 상주의 은모래비치는 예술이었다.


왜 해변이라 부르지 않고 비치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방송에 나온 포토 스폿에서 바라본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정자 하나 있는 그 자리의 주소를 인터넷에서 찾아왔는데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듯 오토바이와 차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던 차에 텐션 높은 여자들의 목소리에 아들은 또 힘겨워했다. 그들은 흥분할 만했는데 그걸 거슬려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평일을 골라 돌아다녀도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었으니 더더구나 어쩔 수 없었다. 구불구불한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다랭이 마을은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 만큼 관광객으로 넘쳐나 마을 안까지 들어갔다가 그대로 돌아 나오고 말았다. 바이크 여행자 먹보와 털보의 일정을 똑같이 소화해 보려던 것이 욕심이었다.


절반의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꽤 오랫동안 자신의 증상과 상담 이야기를 했다. 상담과 진료에 지쳐있던 아이에게 푸른나무재단의 상담 프로그램이 조금 신선했던 것 같다. 애써 물어보지 않았는데 스스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학구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 새 상담선생님이 보호자와의 첫 면담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학생이 스스로 이곳을 원했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쉽게 말해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죠. “


진지하고 신중해 보이는 선생님의 말투치고는 꽤 직설적이어서 인상적이었던 그 말처럼 우리는 절반을 넘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섣부른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 그렇다. 돌아오는 길에 거제 특산품 멸치 회무침을 포장해 와 소주 한잔을 곁들였더니 더 그랬다.


아이도 독일마을에서 사 온 시즈닝 통삼겹을 구워줬더니 맛있게 먹는다. 한 조각 주길래 먹어보니 삼겹살에도 이런 고급스러운 맛이 있구나 새삼 놀랐다. 거제 멸치는 특산품이지만 횟감으로는 아니었다. 비린 맛이 강해 소주 한 병을 비우고도 많이 남겼다. 멸치는 멸치처럼 볶거나 국물 우려내는데 쓰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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