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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20. 2023

해수보양온천

가족탕에 몸을 담그다

거제의 중심부에는 행정안전부로부터 국민보양온천으로 지정된 전국 10개 온천 중에 하나가 있다. 경남에는 마산을 포함해 두 곳밖에 없다 하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다. 사우나를 즐기던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아빠와의 목욕을 피했다. 나 역시 크게 아쉽지 않았고 2차 성징이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보이고 싶지 않으려니 싶어 딱히 강요하지 않았다.


리조트에 머물 때마다 새벽 사우나를 아쉬워하던 아들이 거제에 와서야 입을 열었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이 아이의 상처를 또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들과 여행을 자주 다니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은 공중화장실에서 소변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우울증 약 부작용이라고 하는 아이의 말에 그러려니 했는데 알고 보니 초등학교 때 당한 학폭의 후유증이었다.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를 닮지 않아 발육이 빨랐다. 신체 발달 수준이 또래 집단에서 항상 상위 10% 안짝이었고 왜소한 체구에 아쉬움이 많았던 내게는 그보다 더 흐뭇한 일이 없었다. 거실 벽에 키높이 스티커를 붙여놓고는 주말아침마다 키를 재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아빠의 유난스러운 반응에 언젠가부터 아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내 기분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또래보다 성장이 빠른 덕에 몸의 변화도 일찍 찾아왔는데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아들을 괴롭히던 녀석들에게는 이 또한 놀림거리였던 것이다. 5학년 때 변성기가 온 아들은 음악수업을 힘겨워했다. 그런 아들의 굵은 목소리를 친구들 앞에서 들려주기 위해 녀석들은 소리를 내도록 아들을 지속적으로 건드렸다. 급기야 화장실에서 소변보던 아들을 덮쳤다. 이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그 뒤로 아들은 학교 화장실을 꺼렸고 중학교 3년 내내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물도 마시지 않았단다. 그리고 대중목욕탕도 가지 않게 되었다. 7년쯤 전에 일본 규슈에 온천여행을 갔을 때 아들은 아침저녁으로 나와 숙소의 온천탕을 들락거렸다. 조그만 욕탕에 단둘이 앉아 있으면 아들은 조잘조잘 말이 많았다. 아빠와 둘만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때만큼은 대화를 방해하는 누나도 엄마도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그때가 아들과 마지막으로 사우나를 즐겼던 시기가 아닌가 싶었다. 거제에서만큼은 아들에게 사우나를 가게 해주고 싶어 알아보니 대중탕과 별도로 가족탕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들은 마음에 들어 했지만 아빠와 둘이 탕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다. 어차피 이용시간이 2시간이니 각자 탕을 이용하고 서로 탕 밖의 휴식공간에서 대기해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아들과 함께 탕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여전히 아쉽지만 매주 한 번씩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휴식공간에는 큰 창이 나 있어서 탕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언젠가는 이 녀석이 내게 탕을 셰어해 주는 날이 오리라 믿어본다. 함께 대중사우나를 다시 가게 되는 날도 오리라.


해수온천이라 해서 바닷물로 온천을 하는 줄 알았는데 거제 땅 깊숙한 암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의 성분이 해수의 그것과 유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바닷물로 목욕을 하면 염분은 어떡할까 어리석은 걱정을 하는 나를 위해 안내문이 있었고 나는 아들이 목욕하는 시간에 꼼꼼히 읽어 알게 되었다. 함께 목욕을 하지 않아 좋은 점도 있었다. 나는 유튜브를 보며 30분 요가 스트레칭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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