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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27. 2023

용산가족공원

서울은 답이 없다

거제 한달살이는 계획보다 9일을 앞당겨 마무리되었다. 상담프로그램 때문에 주 1회 서울에 오다 보니 3주라는 시간도 우리의 체력도 금세 바닥이 났다. 특히 학업중단숙려제는 4주 차부터 주 2회 상담을 요구했기 때문에 한차례 결석을 감수하려 했지만 의외로 아이의 반응이 좋아 모두 참석하기로 하면서 계획이 어그러졌다.


아무려면 어떠랴. 우리는 한동안 집을 떠났고 부자간에 단둘이 좁은 공간에 기거했다. 그 기억을 쌓은 것만으로도 본전은 톡톡히 뽑았다. 우리는 같이 장을 보았고 요리를 했으며 단둘이 오붓하게 영화를 감상했다. 식사 때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따뜻하고 서민적인 가족애가 느껴지는 이 드라마를 아이는 좋아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서민적인 소비성향을 보이지 않는 건 좀 아이러니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여긴다.


오늘은 주 2회 차 상담을 마치고 용산가족공원에 가기로 했다. 이틀 전에는 비가 내려 반려견 호두를 집에 두고 서울숲에 다녀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분리불안이 심하진 않지만 개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라 집에 두고 나올 때면 늘 마음이 쓰였다. 아무튼 2023년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코앞에 둔 고등학교 2학년 학생과 쉰 고개를 갓 넘긴 직장인 가장이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것일까?


그래도 되는지 아니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휴직 첫 달 25일, 급여통장은 텅텅 비었고 입금액은 한 푼도 없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난 빈털터리다. 아무렴 어떠랴? 오늘은 맑고 용산가족공원은 한가로우며 호두와 아들은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게 완벽했지만 역시나 서울은 답이 없는 곳이다. 주차장 입구에서 20분이 넘게 기다렸으나 차는 단 2대가 들어갔고 내 앞에만 5대의 차가 주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각지에서 포장해 온 피자와 샌드위치는 식어가고 있었고 땡볕 아래 차 안은 에어컨을 틀어도 역부족… 달궈지고 있었다. 때마침 아이스백에 넣어온 탄산음료도 아이의 몸도 데워지고 있었다. 대기 25분 만에 모든 걸 포기하고 차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평일의 서울은 상상하기도 싫은 주말의 서울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서울은 서울이다. 그래서 호사를 누리려면 주머니도 두둑해야 한다. 우리에게 서울은 어울리지 않았다. 집을 내놓은 지 한 달, 과연 서울을 탈출할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한 서울살이는 여전히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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