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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30. 2023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23.04.30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몇 년 전에 인상 깊게 보았고 지난해 ”브로커“를 봤으니 이 영화가 내가 본 그의 영화로는 세 번째다. 브로커는 한국배우들이 나오는 우리나라 이야기여서 그런지 이번 영화는 원더풀 라이프와 더 분위기가 닮아있었다. 일곱 살 갓 초등학교에 입학하려던 때가 되어서야 아이가 뒤바뀐 사실을 알게 되는 한 가정의 이야기다. 워낙에 유명한 영화이니 설명은 생략하겠다.


토요일 밤에 갑자기 이 영화를 혼자 보게 된 이유는 전적으로 제목 때문이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아버지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영화를 보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하니 도대체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 건가 싶어서 말이다. 역시나 영화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되는 방법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공 아버지는 영화 말미에서야 아버지가 되었다. 아니 아버지라는 자기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는 쭈욱 아버지였으나 아이가 뒤바뀐 사건을 통해 비로소 자기 내면의 부성을 자각한다. 그렇게 그는 이버지가 되었다. 6년 넘게 키운 아들이 자신의 생물학적 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야 그는 부자간의 진정성 있는 관계를 회복한 것이다. 언제나 예기치 못한 사건이 극적인 관계 전환의 계기가 된다.


내게도 충격적인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덕분에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좌충우돌하면서 말이다. 영화 속 아버지는 상황을 주도하려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결국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고 그 문제가 누군가의 주도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그저 아버지가 되는 일 외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나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내 의지와 내 해법과 내 방향성 따위는 일을 할 때나 써먹는 것이다. 부자간의 관계가 가족 간의 화해가 내 계획대로 돌아갈 리 없다. 그래서 나는 그저 아버지가 되어야 했다. 본래 아버지였으나 이제야 아버지가 되어 간다. 영화 속 아버지는 7년 만에 나는 17년 만에 말이다. 오늘 저녁에는 아들이 원하는 부추전을 해주었다. 눅눅하고 두꺼운 엄마의 것과 다르게 바삭하고 얇은 부추전을 만들어주었다.


아들이 내 요리를 좋아하는 것에 잠시 으쓱했던 적이 있다. 휴직 후에 처음 시작한 요리에 아들이 과하게 반응해 주니 나도 모르게 착각에 빠진 것이다. 내가 한 부추전을 먹어보니 얇고 바삭했지만 느끼했다. 튀김가루를 너무 많이 섞은 탓이다. 아들은 느끼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점심에 먹다 남긴 제육볶음을 찾았다. 비록 느끼해도 조금 맛이 없어도 아빠의 요리를 계속 먹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에게 아빠의 요리는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그냥 요리가 아니었다. 라면 말고 아빠가 해준 요리를 16년이 지나서야 먹어 본 아들은 아빠가 나만을 위한 요리를 해준다는 사실에 그저 감동했던 것이다. 그래서 거제에서 만들었던 유부초밥은 내가 먹기에도 힘겨웠는데 아들은 스무 개나 해치워 버린 것이다. 나는 그냥 아빠가 되면 되는 것이었다. 내 안에 남아있는 아빠를 송두리째 끌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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