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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May 10. 2023

입신양명과 공명심

(2013.02.01)

몸을 일으켜 이름을 드날리고, 공을 세워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나 욕망의 영역이면서도 야심이나 야망이라는 포장을 통해 정당화되고 합리화되었다. 특히 과거에는 남아로 태어났다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고 뜻을 세워 '수신'하고 '제가'하며 '치국'함으로써 '평천하' 해야만이 사내다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주입시켰다.

 

이러한 관습은 결국 조금은 다른 본능을 타고난 이에게 가끔씩 부모의 뜻을 어기고 비정상적이라고 오해받는 비범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게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상식적인 도덕심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부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린 가끔 세상이 가르친 바람직한 틀 속에서 도피해 버린 형편없는 패배자쯤으로 취급되는 불편한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0.1%의 예외도 없이 때로는 그러한 시선 속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급기야 전혀 고민의 조건이 되지 않는 사안을 갖고 몇 년씩 골머리를 앓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만연한 대한민국은 도저히 상식적이고 건강한 사회라 말할 수 없다. 우린 끊임없이 세상이 알려주는 성공의 법칙을 갈구하는 빠꼬미가 되어 갔고, 그 맹목성은 가히 절대자의 진리와 같이 부정은커녕 반론조차 용납되지 않았고 급기야 많은 이들의 마음을 무력감에 빠뜨리곤 했다. 진정 폭력적이라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천편과 일률의 사회다.

 

서른두 살, 첫애가 태어나기 한 달쯤 전이었을 때 형에게 물려받은 9년 된 중고차에 고귀한 2세(?)를 태우고 다니기 싫었던 나는 조금의 무리를 하여 새 차를 구입했다. 당시 내가 구입한 차는 대한민국에 아마도 1%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지독히 외면당한 소형미니밴이었다. 극강의 레어아이템이었다고나 할까. 차를 구입할 때 따지는 조건은 당연히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디자인에 목숨 거는 폼생폼사도 있을 것이고, 연비나 경제성을 따지는 이에서부터 활용도에 따라 혹은 취미영역에 따라 우리는 다각적인 검토를 통해 최종적으로 원하는 최적의 차량을 선택한다. 저렴하지도 않을뿐더러 영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은 당연한 것이다.

 

차를 뽑고 얼마 되지 않아 만난 고교 동창은 나의 차종을 듣더니 느닷없이 이렇게 물어봤다. "왜 쏘OO 안 샀어?" 대한민국 유일의 글로벌자동차 업체 현O자동차 중에서도 한때 자가용 차량의 40%에 육박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중형세단 쏘OO... 친구의 질문이 '쏘OO이 좋지 않아?' 혹은 '쏘OO 보다 나아?' 혹은 '쏘OO 보다 싸거나 비싸?'라고만 물어 왔어도 내 기억 속에 이렇게 오래도록 머물지는 않았으리라.

 

그 녀석의 질문은 왜 '쏘OO'을 사지 않았는가였다. 30대 초반의 월급쟁이가 집 장만을 하기 전 신혼시절에 타야 하는 차의 정답은 쏘OO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 녀석의 그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대해 나머지 여섯 명쯤 되는 친구들이 모두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표정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 도대체 왜 쏘OO이 아니야?"

 

우리는 아무 근거 없는 자신의 논리를 구약성서의 십계명을 능가하는 절대가치인양 내세우며 상대를 몰아세운다. 그날의 나는 당연히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차를 살 때 그들보다 최소 세 배는 더 고민했고 그들의 선택이유보다 최소 열 가지는 더 신중한 검토결과를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날은 입을 닫았다. 누군가 그랬다.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이에게는 조언하는 게 아니라고.

 

'왜 쏘OO이 아니야?"라는 질문은 '왜 대기업을 안 갔어?'와 같은 맥락이며, '왜 결혼을 안 해?' 또는 '왜 아이가 없어?'와 동급으로 무례하며, '왜 동성이 좋아?' 또는 '왜 못생겼어?'와 같이 뻔뻔하다. 입신양명과 공명심은 선택적 가치일 뿐이며, 거기에서 심리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은 대체로 불행하다. 심지어 우리는 '싸이'조차 입신양명과 국위선양의 아이콘으로 열광한다.

 

내가 결혼 후에 두 번째로 구매한 차량은 중형 미니밴이다. 그리고 난 여전히 별종취급을 받지만 최소한 현O자동차의 '그OO'가 아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차종이 다양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40대 유부남에게 정답은 '중형평수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O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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