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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May 03. 2023

분노와 짜증

세상을 향한 감정의 범주화(2016. 8.22)

일상의 삶은 늘 기대와 흥분을 동반하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순간이 행복감에 넘쳐 있다면 당신은 조증을 의심해야 할 수도 있다. 주로는 삶이 주는 반복성과 무료함, 익숙함에서 느껴지는 편안함보다는 지루함이 당신의 시간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이유 없이 삶의 단조로움에 싫증이 나 있다면 현재 당신의 감정선은 짜증이다. 상대적으로 이런 심리상태가 두드러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는 젊었거나 젊게 살고 있거나 그야말로 삶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화가 나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화를 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화를 부르는 감정은 둘 중 하나다. 분노이거나 짜증이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는 건 사춘기 혹은 갱년기 증상과 같이 신체적인 변화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단조롭고 반복적인 재미없는 삶에 대한 분노인 경우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짜증이라고 쉽게 치부하지만, 짜증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위험신호다.

분노는 대개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참을 수 없을 때 일어나는 감정 상태다. 그것은 주로 세상을 향해,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조직적 권력을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분노는 뭔가 정당한 것, 짜증은 뭔가 지질한 것이라는 인상이 은연중에 우리들 마음속을 지배해 왔다. 하지만 한번쯤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분노와 짜증이 어떻게 구분되고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말이다.


조간신문의 정치면이나 사회면을 뒤덮는 온갖 기사들에서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명백하게 부당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조직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일어나면서 그 현상을 조금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눈감고 귀 닫고 입을 막고 살면 지금보다 행복할 거라는 노랫말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무관심 내지는 착각이 세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우리는 이럴 때 짜증 난다고 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바쁜 출근길을 가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짜증스러운 일들과 마주한다. 교통체증, 그 체증을 무시하고 저만 살자고 요령 피우는 사람들, 그 혼잡스러운 상황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교통경찰들, 그럼에도 어떤 죄책감이나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사람들... 우리는 이들과 마주하면 주로 짜증이 난다. 우린 분노하지 않는다. 우리의 짜증은 그저 다스려야 할 감정일 뿐이다. 반복되는 짜증으로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그저 성격 더러운 유형으로 분류될 뿐이다.

신문기사를 보며 분노를 느끼고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세상이다. 그들은 분노를 거부한다. 명백한 팩트에서 조차 현실감을 상실해 간다. 반대로 그들에겐 짜증이 늘어간다. 제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일들이 모두 짜증으로 발산된다. 그렇게 드러나는 짜증은 엉뚱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짜증이 반복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분노할 것과 짜증 낼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눈감고 귀 닫고 입을 막고 사는 게 더욱 사소한 짜증을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짜증을 참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은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삶이 팍팍한 것은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은 나의 게으름과 무지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더욱 불합리하게 만드는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일들이 판을 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분노해야 할 대상을 외면하고 나니 짜증이 스멀스멀 스며든 것이다.

젊어서는 많은 짜증들이 상쇄된다. 그들은 짜증 나는 상황들이 용서된다. 그런 시답잖은 일들로 기분을 망치기에 아직 나는 너무나 젊고 혈기왕성한 것이다. 그러나 몸이 늙고 생각이 늙어가면 짜증은 견디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노화의 슬라이드에 몸을 맡기었다면, 이젠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 일체유심조라 하였지만, 마음은 쉬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그 경지에 오르려면 당신은 성인군자가 되어야 한다.

고로 별 수 없다. 사소한 짜증에서 벗어나려면 장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수밖에 없다. 내 사소한 짜증을 덮을 만큼 거대한 분노의 대상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세상을 구하는 길이다. 그러니 이제 짜증 내지 말고 분노하자.


*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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