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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ul 07. 2023

다시 만난 닥터 존스

시리즈의 추억을 재현하다

완성도나 작품성으로 평가할 수 없는 영화들이 가끔 있다. 내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그런 영화 중 하나다. 007 시리즈나 스타워즈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는 영화지만 그중 단연코 인디아나 존스가 최고였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아들의 기말고사 기간 나흘을 통째로 병결처리하고 우리는 제주도 여행을 감행했다. 우울증으로 학교에 못 가는 아이에게 기말고사와 내신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일시보호프로그램으로 출석을 대신하고 있지만 시험기간에도 위센터에 보내긴 싫어 전부터 벼르던 여행을 방학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에 저질러 버렸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대신 주말에 출발하여 일부러 마지막 하루를 비워 두었다. 다음 날 등교를 위해 하루쯤 쉬어 가기로 한 것인데 아쉬운 마음에 영화를 봤다. 사람 붐비는 곳에 못 가는 병이라 영화관에 가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아이를 위해 두 배가 넘는 값을 주고 특별관을 찾았다. 그래도 인디아나 존스를 집에서 볼 수는 없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세 편은 나의 초. 중. 고 9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제작되었다. 비슷하게 백투 더퓨처 시리즈가 있지만 그래도 인디아나를 당할 순 없다. 그런데 나는 그 기억을 많이 잊고 지냈다. 뒤늦게 아들이 이 시리즈를 찾아볼 때 적극 추천은 해주었지만 말이다. 분명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있을 뿐 어릴 적 느꼈던 감흥은 사그라졌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 영화가 시작한 지 채 1분이 되기 전에 난 무섭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 시리즈가 어릴 적 나에게 주었던 감동의 모든 것이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례로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2시간 30분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내 아들보다 더 신이 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들은 좀 어이없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초로의 아저씨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주 오랜만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어린 나에게 주었던 감동의 지점을 한번 짚어 보겠다. 먼저 주인공 닥터 존스는 고대유물을 탐구하는 고고학자다(이 얼마나 근사한 설정인가?). 그런데 그는 가죽점퍼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채찍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모험가다. 이 두 가지 설정이 현실세계에선 얼마나 미스매칭이란 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영화의 설정으로는 기가 막힌 조합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을 해리슨 포드만큼 완벽하게 재현해 낼 배우는 없다.


2008년에 개봉한 4편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5편 운명의 다이얼은 나의 유년시절을 위로해 준 시리즈 3편을 완벽하게 소환시켰다. 미션 임파서블만큼 황당하지만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추격신, 번번이 악당에게 당하지만 굴하지 않고 위기를 벗어나 끈질기게 도전하는 닥터 존스는 어벤저스를 능가하는 슈퍼 히어로다. 게다가 그는 초능력도 없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칠 때 나 역시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조차 통쾌하고 유쾌해지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니까 말이다. 역시 원작자 조지 루카스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유년의 감성을 잃지 않은 게 분명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유년기의 느낌을, 그 향수를 소환해 준 영화에 만족했던 나는 마지막에 가서 먹먹해지고 말았다.


아르키메데스를 만난 인디가 현재(?)로 돌아가지 않으려 했던 표면적인 이유는 자신이 평생 연구한 과거가 이곳에 모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펀치를 날려 기절시키고 그를 현재로 데려온 여주인공은 그가 진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가 돌아가야 할 현실은 이랬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입대한 아들이 베트남전에서 전사하였고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그와 별거 중이다. 게다가 엉뚱한 소동에 휘말려 살인 누명까지 쓴 그는 도피의 수단으로 아르키메데스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상영 내내 유년시절의 흥분을 소환했지만 마지막에는 가족에게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며칠 전 오십한번의 생일을 맞은 나에게 해주고 있었다. 내 곁에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289일이 되며 한 학기를 통짜로 날린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앉아 있었다. 이 녀석은 아빠의 경고를 무시하고 라지사이즈 콜라를 단번에 들이켠 뒤 영화상영 한 시간 만에 나를 졸라 화장실에 다녀온, 혼자서는 버스도 택시도 못 타는 녀석이다. 그런데 닥터 존스는 그리운 아들을 보지도 못한다. 나에겐 껌딱지처럼 24시간을 함께하는 아들이 여전히 있다.


이 위대한 영화는 2시간 동안 나를 위로하였고 마지막 30분 동안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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