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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Sep 14. 2023

공심타법(空心打法)

(2012.01.12)

90년대 국내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는 허슬플레이어로 이름 높은 공필성이란 타자가 있었다. 프로야구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성을 따서 백넘버 '0'번을 쓸 만큼 개성이 강했고, 아마도 타이즈 올려 신기(농군 패션)를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던 이도 그가 아니었나 싶다.

 

'공심타법'의 어원이 그에게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타석에 서는 그 위대한 타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타자가 타석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성과는 홈런이다. 주자가 있건 없건 팀에 1점 이상의 점수를 올려주는 것이다. 보통 한 점이 나려면 주자가 나가고 선행 주자를 진루시켜 누군가가 최소한 희생타라도 쳐서  홈으로 불러 들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한방의 홈런으로 주자를 일소하고 유유히 다이아몬드 내야를 도는 타자는 최고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제아무리 클린업트리오에 홈런타자일지라도 그가 타석에 섰을 때 홈런을 주문하는 감독은 없다. 확률상 무모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타자는 선행주자가 있으면 그를 진루시키는 것이 1순위요, 기왕이면 본인도 살아서 1루를 밟는 것이 당연한 미션이다.

 

이때 공심타법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1루로 진루하는 방법은 4가지가 있다. 안타, 4구, 死구, 실책. 이중 실책은 상대 팀의 실수를 기대해야 하기에 적극적인 진루전략은 아니고, 4구는 뛰어난 선구안과 인내력을 요구하며, 死구는 날아오는 공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과 싸워야 하고 게다가 140Km를 넘나드는 어마어마한 속도의 공을 몸으로 방어해야 하는 처절한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타자는 깔끔한 안타를 치고 1루로 진루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타율도 오르고, 폼도 나고, 때리는 쾌감도 느끼는 1석 3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안타를 치건, 볼넷을 고르건, 몸에 맞건 팀이 얻는 효과는 동일하다. 심지어 상대 실책조차도...

 

중년의 멋쟁이 브래드 피트를 만나게 되는 '머니볼'은 결국 공심타법의 무명타자를 골라내는 얘기였다. 가난한 구단의 주머니를 고려해서. 야구를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은 이런 편법(?)적인 경기 수준을 매우 비난할지 모른다. 다만 경제학도의 시각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출루'....

 

공필성은 국내에서 死구를 가장 잘 맞는 선수 중 하나였다. 심지어 스트라이크존에서 몸에 맞아 출루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그는 철저한 팀플레이를 한 것이다. 물론 안타를 쳐낼 자신이 조금 덜했을 수도 있다. 다만, 그의 공심타법은 투수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된다.

 

완벽한 스트라이크존이 아니면 좀처럼 배트가 나오지 않으니, 무조건 치려고 대드는 타자들에 비해 처리하기가 매우 곤란한 것이다. 결국 공심타법의 타자들은 안타만 치려는 타자에 비해 높은 출루율뿐 아니라 투수의 심리를 압박하는 효과까지 이중의 팀플레이를 한다는 사실이다.

 

공필성을 비롯한 허슬플레이어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형식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주의자일 수도, 철저한 희생정신의 팀플레이 우선주의자일 수도, 아니면 어떻게든 몸으로라도 때워서 제 몫을 해야 한다는 긴박한 생존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런 공심타자들이 폼나는 스타플레이어 못지않은 선수들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돈을 아끼고 좋은 성적을 내려는 구단주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흥행 면에서도 이들은 기여했다... 매번 깨끗한 안타를 치긴 어렵기 때문에 가끔 노골적으로 몸을 들이밀거나 느린 걸음으로 도루 실패를 하고도 바락바락 심판에게 대드는 그들이 인간적이었으니까... NHL에서 육박전이 필수구성요소이듯이 말이다.

 

공심타법이 야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조직에서건 능력을 인정받기 원하지만, 회사는 그가 능력보다는 돈을 보여주기 원한다.(show me the money!!!) 즉, 깔끔한 안타를 쳐주든 볼넷을 고르든 몸에 맞건 진루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회사가 원하는 걸 준 것이다. 당연히 월급을 받을 자격이 되며, 떳떳하다. 그것을 그가 못 알아낸다면 바보 구단주인 것이다. 당신을 알아볼 구단주는 많다.

 

자신의 기여도를 인정받지 못할까 고민하지 말고, 당신이 지금 클린히트 내지는 홈런만을 노리는 과욕을 부리지 않는지 돌아볼 지어다.

 

TIP. 전설의 농구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의 주장 '채치수'는 당시 고교농구 최강의 '산왕공고'를 맞아 엄청난 실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헤맨다. 이때 지역 라이벌 '능남'의 '변대규'가 나타나 넘어진 채치수 머리에 '무'(?)를 썬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무는 횟감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지... 네가 팀의 주역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너희 팀에는 주역이 될 선수가 많다. 네가 아니면 팀이 질거라 생각하지 마라' '산왕'의 최강센터 신현철은 도미, 너는 진흙탕 가자미다."

 

이 명대사는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슬램덩크 마니아라면 알 것이다. 이 장면이 얼마나 짜릿한지를...

 

안타까운 현실은 대부분의 가자미가 도미를 꿈꾼다는 것... 가자미는 미식가를 만족시킬 고급요리는 될 수 없을지언정 영양과 포만감을 준다. 즉, 화려하지 않지만 기능은 같다는 말이다. 우리는 좀 더 포장보다 기능성에 집중할 때가 왔다.

 

나이 마흔이 넘더니 요즘 건전해졌다. 철이 드는 걸까? -.-;;


* Image from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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