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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ul 05. 2023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공정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착각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누가 봐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행운에 버둥대는 사람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값이 이미 치러졌거나 앞으로 그 혹독한 대가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나에겐 있었다. 예컨대 로또 대박을 맞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가 험한 세상을 이겨내기 위해 평생을 부단히 노력했지만 고생만 죽도록 했던 초로의 가장이라면 그는 대박을 맞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혹여 그가 백수건달에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횡재를 한 것이라면 그는 평생을 두고 그 대박행운에 진 빚을 갚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사치와 허영에 재산을 탕진하거나 사기꾼의 농간에 놀아나거나 돈에 눈이 어두워 결국 가족과 친지를 잃고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다는 흔한 시나리오 말이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리사욕이나 일신의 영달을 위해 주변의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이용하거나 심지어 짓밟기까지 하는 후안무치한 인간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고, 반대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좌고우면 하지 않는 이들은 마침내 어떤 형태로든 빛을 보고 주위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행여 그런 확신이 흔들릴 만큼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을 목도하더라도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정당한 결과로 보상받거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나에겐 확고했다.


그런데 가끔 나의 이 강력한 믿음이 처절하게 흔들리던 순간들이 생겨났다. 뻔뻔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승승장구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지는 상황이 말이다.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이라는 나의 세계관은 사실 전혀 근거가 없었다. 다만 그래야 한다는 믿음의 결과물이었다. 이런 나의 믿음 또한 사회질서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에게 세뇌된 사회화의 과정이었다. 그래야 내 주위에 시시각각 일어나는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나는 정의로운 세상을 살고 있지 않으며 그것이 실현되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믿음은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수단에 불과했다.


세상에 대한 내 믿음은 근거가 취약하다. 그렇다고 내가 종교에 심취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부정되었다. 신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으로는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해 낼 수 없었다. 따라서 세상에는 누군가에게 터무니없는 공짜가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한 푼의 아량도 없이 철저하게 야박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이 전생의 업이라고 말할 만큼 나는 독실한 불교신자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아는 것, 믿는 것에 근거가 취약할 뿐 그것이 완벽하게 부정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 정직하고 성실하게 남은 생을 살아내는 것 외에 답을 얻지 못했다. 세상이 정의롭건 그렇지 않건 말이다. 믿었던 신념이 무너져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별로 없었다. 특히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책임을 짊어지고 사는 오십 대에겐 더 그랬다.


어제 휴직 중인 직장에 인사가 났다. 내가 복귀해야 할 부서에 중요한 자리를 놓고 여러 사람이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가장 유력했던 후보가 탈락했다. 그 유력 후보가 되었다면 난 복귀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사공모가 진행되는 두 달 내내 이런저런 근심이 많았다. 이 결과를 두고 논평을 하긴 우습지만 내가 내년에 복귀하기에는 그런대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작년부터 삼재를 맞으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인사결과는 나의 의도나 처지와는 무관했지만 나는 수혜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공짜일까? 아니면 또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으니 받아먹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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