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시리즈 전편을 몰아보다
오늘은 뭔가를 해야 했다. 아이와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을 함께 지낸다는 게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지 모르는바 아니었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버둥거리고 헐떡거리며 6개월을 왔고, 한주의 일정이 끝나는 금요일마다 나는 폭발했다. 내 일을 대신해 줄 이가 없었지만 나 역시 한계상황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딸아이를 알바에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오전부터 집을 나섰다.
토요일의 광화문은 집회로 붐비지만 의외로 광장을 벗어나면 한가롭다. 멀리 가고 싶지 않았다. 한주 내내 답답해하는 아이를 금요일마다 싣고 다닌 게 얼마던가? 나는 어제도 아이를 태우고 왕복 400킬로미터가 넘는 도로를 달려 양양에서 돌솥밥만 먹고 왔다. 오피스빌딩이 많은 광화문엔 의외로 주말 주차료가 할인되는 곳이 많았다. 단돈 5천 원에 종일 주차를 하고 근처 소극장에서 비포 시리즈(선라이즈, 선셋, 미드나잇) 전편을 봤다.
12시 20분부터 5시간 30분 동안 내리 세편을 보면서 막간에 담배 한 대씩 피우고 동굴 같은 소극장에 들락거리는 오십 대 아저씨가 어떻게 비쳤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곳은 나에게 너무 안락했다. 아침부터 쫄쫄 굶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 영화 전편을 한번 보아야지 했던 게 10년이 되었다. 마지막 작품이 나오기 전부터 아니 90년대부터 이 영화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내는 영화에 대한 취향 자체가 없는 사람이라 이 영화를 집에서 혼자 볼 수밖에 없었는데 왠지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전편을 몰아서 보려 했는데 집에서 세 편의 영화를 집중해서 본다는 건 모두 잠든 시간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마블시리즈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룻밤을 할애할 만큼 간절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비포 선라이즈(1편)는 젊은 날에 봤더라면 감상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영화에 몰입하기에 나는 너무 늙었다. 그저 풋풋한 두 배우의 리즈 시기를 보고 있다는 것, 그들의 대화가 엉뚱하지만 발랄하다는 것, 호텔에 묵을 돈이 없어도 그들의 하룻밤 노숙이 전혀 비루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들이 당시에 나와 비슷한 세대였다는 것 등등… 아이돌이 나오는 로코 드라마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지만, 감정 이입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쉬움보다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더 위안을 받으며 비포 선셋(2편)을 이어서 감상했다. 1편에서 9년이 흐른 영화의 배경은 엇갈린 운명의 주인공들이 서른두 살의 성숙한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내용이었다. 역시나 하루(이번엔 거의 2시간?) 동안의 이야기였지만 1편보다는 조금 친근해진 연배(?)가 된 주인공들의 대화가 한결 편하게 들렸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여주인공이 1편의 하룻밤을 회상하며 만든 자작곡을 불러 줄 때에는 비로소 남자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고 말았다.(OMG!)
그렇게 1편 때 보다 만족도가 높아진 나는 티켓부스에 가서 발매 때 잠시 보류했던 영화 포스터 세 장을 전부 받아오고야 말았다. 토요일 오전에 나가서 멜로영화 세 편을 보고 돌아온 남편의 모습을 아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포스터만큼은 남겨야 할 영화였다. 그리고 오후 4시가 되어 시작한 비포 미드나잇(3편)은 시리즈 전편을 몰아보아야 할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해 주고도 남았다. 나는 이날 온전히 힐링되었다.
3편은 전편으로부터 다시 9년이 흘렀고 이들 사이에는 예쁜 쌍둥이 딸이 생겨났다. 여주인공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후덕한 40대 중년이 돼있었지만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니 사실감은 훨씬 더했다. 이 영화는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양육문제, 맞벌이 부부의 공동육아, 가사분담에서 비롯되는 다툼, 서로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은근한 신경전 등 온갖 현실가족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주인공 둘의 끝없는 대화로 영화 전편을 채운다. 이들의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대화가 주로 불협화음으로 메워지는 것에서 나는 놀랍도록 감정이입되고야 말았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3편의 대화가 분명히 불편했을 것이다. 공감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결혼생활 21년을 채워가고 있으며 세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을 20년 동안 낳고 길렀다. 주인공의 대화에서 깊게 공감이 간 대사는 이런 거였다.
“지긋지긋해, 또 시작했군, 너의 그 지랄을 난 평생 받아주고 살았어… 등등”
친구부부가 선물한 여행지에서의 특급호텔 숙박기회를 말다툼으로 날려버릴 뻔한 장면(어마어마하게 긴)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아내가 호텔방을 박차고 나와 해변에서 혼자 술을 먹고 있을 때 남편이 찾아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지만 아내는 이를 차갑게 외면한다.(남편의 이 수법에 질렸다는 식으로) 남편도 이제 더 이상 못해먹겠다는 표정을 짓는 바로 그때 아내가 남편의 화해 시도를 넌지시 받아준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이 탁월한 장면에서 나는 탄복하고야 말았다. 영화는 사랑에 설레던 연인이 18년이 지난 후 어떤 모습인지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물론 이 부부(사실혼)는 여전히 위태로우며 다시 헤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엔딩 장면은 긍정적이다. 그 긍정이 영원할 수 없더라도 그 화해의 모멘텀은 그들 공동의 작품이다. 그 결말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장애들이 무시로 등장하고 그것들은 가볍거나 무겁고 작거나 크고 단기적이거나 장기적이며 해결 가능하거나 전혀 불가능하다.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가정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부부의 일방이 화해를 원하고 다른 일방이 그걸 받아들이는 거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만의 화해루틴을 찾아낸 부부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관계에서든 정답이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건 오답을 인정하고 화해의 기술을 터득한 이들에게만 허락된다.
영화를 보고 나와 근처 오래된 단골집에서 아내와 먹을 생태탕을 포장했다. 그리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