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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May 14. 2024

간절함의 기적

그것이 과연 기적인 걸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언뜻 들으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단지 간절함만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 무언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원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마음만 간절했다고 덥석 결과가 얻어지진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상식의 영역이다.


그런데 나는 아주 가끔 그 간절함의 기적을 경험해 보았다. 물론 이런 경우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할 만큼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나의 노력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닌 거다. 여러 가지 조건과 시기와 행운이 절묘하게 들어맞을 때에만 가능한 거다. 그럴 때 우리는 간절해진다.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지만 나의 의지만으로 결정 나는 일이 아닐 때 간절함의 유무가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간절함의 가치를 안다. 무턱대고 간절한 것이 아니라 내 노력과 의지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에 대한 간절함은 분명 힘을 발휘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에 그 놀라운 뜻이 담겨있는데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했으면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고 한다. 우리는 보통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을 그저 인간이 할 몫은 끝났으니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서 어찌 미물인 인간이 마음을 비울 수 있는가? 하늘의 뜻이 나의 뜻과 같기를 바라면서 어찌 한가하게 그 일을 잊어버릴 수 있는가? 나의 간절함을 어떻게든 하늘에 전달해도 될까 말까 한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들은 지극한 마음이 하늘에 전해질 때까지 정화수를 떠 놓고 새벽마다 '비나이다'를 외친 것이다. 그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하는가?


종교가 있는 이들은 기도를 할 것이나 그마저 없는 이들은 아무에게나 빈다. 그저 영험해 보이는 모든 것에 빈다. 우리의 토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간절함은 기운이다. 삼라만상 우주를 관통하는 태극과 음양오행의 원리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세상에는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 기운을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 기운이 어떻게든 내가 바라는 일에 도움을 주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우리는 빌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간절함에 하늘이 감복한다는 말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그가 부처님에 빌었건 하느님께 빌었건 성황당 당산나무에 빌었건 관계없다. 간절한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우주의 기운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비과학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혹은 인류는 과연 어디까지 과학의 원리를 알고 있으며 어디까지 맹신하는가? 과학철학자 장하석 교수의 강연을 듣다가 가장 통렬하게 깨우친 것이 있다.


우주만물이 과학에서 규정한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운행원리를 모르는 인간이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해 보고자 불완전하지만 자연법칙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턴역학은 태양계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과학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비과학을 경시한다. 비과학은 사실 과학이 해석하지 못한 영역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속이나 마법의 판타지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인간이 쌓아온 지식과 지혜의 총량이 여전히 세상을 이해하는데 부족하다는 걸 인정한다. 그리고 그 닿지 못한 영역을 존중한다. 나는 모태에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나 현재는 딱히 종교가 없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이 세계를 관통하는 기운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간절함은 기도의 형식을 띠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간절히 바라고 간절히 걱정하고 간절히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건강해질 수 있을까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간절하게 생각한다. 그 모습은 대체로 노심초사, 전전긍긍, 안절부절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괴롭혀야 내 간절함이 조금이나마 하늘에 닿으리라 믿는다. 아니, 사실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내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데 딱하디 딱한 내 자식의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간절함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모든 부모는 간절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내 일이 아니라 내 생때같은 자식의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흔을 넘긴 이후로 내 일에 이토록 간절해 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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