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산우공 Jun 16. 2021

번듯한 혹은 반듯한

착시현상(2020. 3. 18)

의미나 표현이 유사하지만 곰곰 뜯어보면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이 있다. '번듯하다'와 '반듯하다'의 경우에도 이런 사례가 아닐까 싶어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 번듯하다; [형용사] 1. 큰 물체가 비뚤어지거나 기울거나 굽지 아니하고 바르다. 2. 생김새가 훤하고 멀끔하다. 3. 형편이나 위세 따위가 버젓하고 당당하다.


** 반듯하다; [형용사] 1. 작은 물체, 또는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비뚤어지거나 기울거나 굽지 아니하고 바르다. 2. 생김새가 아담하고 말끔하다.


첫 번째 뜻의 차이를 보면, '번듯하다'는 큰 물체의 형상을 가리키는 말이고, '반듯하다'는 작은 물체 또는 생각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 두 단어의 용례를 보면 번듯하다의 경우, 번듯한 직장, 번듯한 집, 번듯한 건물 등 주로 외형적인 모습이 멋지고 훌륭할 때 쓰인다. 한편 반듯하다의 경우, 반듯한 행동, 반듯한 자세, 반듯한 마음가짐 등과 같이 사람의 내면이 바르고 올곧을 때 주로 활용된다.


모음 한자의 차이가 이렇게 다른 의미를 내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번듯과 반듯은 그 미묘한 유사성과 차이점만큼이나 명쾌하게 이원화된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번듯은 많은 이들이 지향하는 사회적 성공과 외형적 성취를 형상화하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번듯하고 폼 나는 사회적 지위, 그리고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 모습은 대체로 번듯한 대학, 번듯한 직장, 번듯한 직위, 번듯한 재산 등으로 구현된다. 반대로 반듯은 많은 어르신들이 기대하는 바람직한 인간의 품성을 내면화하고 있다. 인격적으로 흠결 없는 인간이라면 대개 반듯한 태도, 반듯한 말투, 반듯한 옷차림, 반듯한 인상 등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닌 어르신들에게 내면이 반듯한 인격으로 비치길 갈구하는 것보다는, 온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외형이 번듯한 인간이길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겉으로는 번듯한 스펙을 쌓아왔고 많은 것을 이루어낸 인간에 대해 그들의 내면도 반듯할 것이라는 전혀 근거 없는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들의 번듯한 형상이 유난히 반듯하게 비치는 것도 이러한 오해를 확대 강화하는 요인이라 할 것이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외교관이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 합석을 했을 뿐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친분이 있다고 말할 수는 전혀 없는 분이다. 다만 그분이 당시에 갖고 있던 번듯한 직함과 반듯한 외모와 차분한 음성에 조리 있는 말투가 그를 범상치 않은 인물로 기억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가 번듯한 직함에 어울리는 번듯한 학력과 경력을 갖추고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그분의 낭랑한 음성 사이로 전해 오는 대부분의 콘텐츠들이 상당히 구태의연하고 번지르르할 뿐 알맹이가 없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남다를 만큼 도드라지는 화제들로 인해 무언지 알 수 없는 거북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참 번듯하면서 반듯해 보이는 그분에 대한 기억이 잊혀져 갈 때쯤 또 우연히 그분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그분은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지만 외교관으로서 꽤 욕심을 내 볼만한 자리를 아직은(?)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과감히 은퇴를 결정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인생 2막은 평소 신앙심이 깊어 시간을 쪼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던 그에게 한 선교재단에서 국제선교를 책임지는 목회자의 자리를 제안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분의 종교는 알지 못했지만 목소리만큼은 여느 목사님을 방불케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분께는 꽤 어울리는 자리이겠구나 하였다.


그렇게 아스라이 잊혀져 가던 그분에 대한 기억을 우연치 않게 떠올리게 되고 얼마 안 있어서, 내가 그분을 만나기 한참 전에 그분이 나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꽤 오래전 한 외교부 장관이 자신의 자녀를 공무원으로 편법 임용하려다 들통이 나서 사퇴를 하는 등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에서 당시 인사를 총괄했던 그분의 이름과 얼굴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복지부동에 영혼 없는 공무원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 정도의 행위로 그를 단죄할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가 이 행위로 인해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상관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료사회에서 이 정도의 행위는 징계 감도 되지 못한다... 혹자는 이런 식으로 말할지도 모른다. 그 사건 이후의 그분의 이력을 보더라도 그에게 큰 책임과 징계는 내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복종의 의무)에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문구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 그분의 행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조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직무상"이라는 명쾌한 제한이 드러난다. 당시 외교부 장관의 지시는 결코 직무상 명령에 해당하지 않는다. 매우 불법적이고 탈법적이며 부당한 명령에 해당할 뿐이다.


그분에게 조금이라도 사회적 양심과 종교적 신앙심이 남아 있었더라면, 즉 그분이 눈곱만큼이라도 반듯하였더라면 그 부당한 사건의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를 할 수 있었을까? 이렇듯 번듯한 외형과 반듯한 내면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그들의 번듯해 보이는 삶의 이력과 행보가 결코 내면의 반듯함을 보증해 주지 않는다.


번듯하기만 하다면 반듯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하는 이들이여, 그대가 반듯하지 못하다면 결코 그대의 번듯한 스펙을 보전할  없다. 반대로 그대가 반듯하다면  어떠한 협박과 강압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번듯한 명예를 지킬  있다. 반듯하지 않은 번듯함은 모두 착시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Violenc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