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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ug 13. 2021

뚜벅뚜벅 혹은 터벅터벅

악착같이 걷기(2014. 6. 17)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를 뚜렷이 내며 잇따라 걸어가는 소리. 또는 그 모양.

터벅터벅: 느릿느릿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양.

*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모두 걷는 소리나 모양을 나타내는 형용사다. 아마도 대부분의 이들에게 연상되는 모습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뚜벅뚜벅은 능동, 터벅터벅은 수동이다. 뚜벅뚜벅에는 스스로 정해 놓은 목표점을 향해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가는 이의 결연한 의지와 도도한 자신감이 묻어있다. 그러나 터벅터벅에는 그저 서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함과 꼭 이렇게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와 바닥난 체력마저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과 마주한 매일 아침의 시작이 항상 뚜벅뚜벅 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내 모습은 스스로의 의욕을 더욱 떨어뜨릴 뿐 아니라 보는 이에게도 과히 좋은 인상을 줄 수는 없다. 터벅터벅 걷다 보면 급기야 꾸역꾸역 나아가게 되고 결국 중도에 멈춰 서거나 쓰러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뚜벅뚜벅 걷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지만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이 마음먹기다. 그다음으로 어려운 것이 마음먹은 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마음먹는 것이 실행보다 어려운 이유는 그냥 마음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장애를 이겨낼 만큼의 굳고 단단한 마음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길마다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이 지겨움이던지 고단함이던지 분노이던지 설움이던지 중요하지 않다. 난 이미 뚜벅뚜벅은커녕 터벅터벅의 단계에서 꾸역꾸역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쯤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포대교가 보이는 공덕교차로쯤에서 담배를 한대 피워야만 다리를 넘어갈 각오가 다져진다면 그것은 분명히 꾸역꾸역이다.

 

밥벌이는 지겹지만 도리가 없다. 도리 없는 일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데 내 걸음마저 터벅거린다면 이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천천히, 뚜벅뚜벅'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계신 분이 있다. 그분의 공식적인 좌우명은 '천천히, 뚜벅뚜벅'이지만, 술자리에서만 공개하는 내용은 조금 다르다. '천천히, 뚜벅뚜벅.... 그러나 악착같이'

 

악착같이 걷지 않으면 뚜벅뚜벅 걷기도 힘든 세상이다.




짐작은 했던 거지만  글을 통해 무려 7 전부터 내가 악착같이 버텨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특히 위의 글을 썼던 해는 이직을 하고 가장 힘들다는 적응기의 정점을 찍었던 시기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글  없다고 하지만 무려 다섯 차례 이직을 경험한 나의 결론은 다르다. 구더기가 다섯  생기면 장을 포기할 수도 있다. 우린 장이 없이도   있으니까물론  삶은 참으로 맹숭맹숭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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