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프로 똥줄러의 고백
살면서 걱정과 근심거리에서 자유로워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산사에 들어간 구도승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린 갖은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걱정과 근심은 늘 긴장과 불안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감정상태를 안정하다고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긴장과 불안이 때로 놀라운 성취의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그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면 모든 인간은 견디기 어려워하고 급기야 매우 부정적인 결과로 표면화되곤 한다.
나는 쉰 새해를 살아오면서 지각과 인지능력이라는 걸 얻은 이후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언제나 다양한 형태로 발현하는 그것으로 인해 끊이지 않는 긴장과 불안감을 다스리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였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저술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읽고 나서 나와 같은 이들이 꽤 많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지만 그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이겨내는 건 언제나 별개의 문제였다. 진정 슬픈 건 이런 몹쓸 기질이 유전된다는 사실이었다.
시국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업무에 소홀했던 게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사실 내 업무는 시국상황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젠 그 핑계조차 대기 어려워진 오늘 아침, 나와 비슷한 이유로 한숨을 쉬고 있는 딸아이를 보았다. 물론 나보다 훨씬 성실한 아이지만 이 아이도 언제나 닥쳐오는 데드라인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편치 않은 하루하루를 산다. 대체로 결과가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되긴 하여도 언제나 이랬다. 정말 닮아도 너무나 닮아 있는 내 아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스타벅스 상품권을 카톡 선물로 보냈다. 아이를 응원하려는 마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언제나 닥쳐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눈이 벌게져서 일을 하는 나의 기질을 꼭 빼닮은 딸아이가 그 위기를 잘 극복해 왔듯이 나 역시 그래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매사에 느긋해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적당한 긴장은 집중력을 키워주지만 과도해지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몸이 감당하지 못해 다양한 증상을 동반하게 된다.
내가 쉰을 넘어서도 느긋해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내 불안의 원인이 내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코앞에 닥친 업무를 완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내 아이가 그러하여도 똑같이 아니 그 이상의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전전긍긍, 노심초사, 안절부절의 나날이 지속되는데 사람의 몸이 버텨낼 재간은 없다. 결국 느긋함은 걱정과 근심에서 해방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느긋함은 그렇게 보이려는 의지의 표현일 뿐 내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나 여유롭고 느긋하며 차분하다는 말을 들어온 나의 속은 늘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