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유망과 전망

by 낙산우공

서울의 강북엔 다양한 얼굴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양도성 성곽 주변에 숨은 명소가 많다. 요즘은 SNS가 발달해서 다들 어떻게든 알아내고 찾아오지만 나는 그런 곳이 지척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걸어갈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느끼곤 했다. 어제는 이른 퇴근 후에 아이와 아내와 창신동 뷰맛집에서 식사를 했다. 낙산성곽과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그곳은 예약앱으로 한 달 치가 만석이 되지만 퇴근 시간 이전에 가면 꽤 자리가 있다.


이 동네에 사는 이들만이 누리는 호사다. 거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좁은 골목에 택시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높은 곳이라 교통편이 애매한데 주차시설이 따로 없으니 대부분 택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몰려드는 젊은 커플들 사이로 우리는 유유히 집으로 향했다.


그 멋진 전망을 보면서 뜬금없이 우리가 사용하는 '전망'이라는 단어의 다양한 용례가 떠올랐다. 요즘 들어 리버뷰니 시티뷰니 하면서 전망 좋은 집에 사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방송매체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집이 대부분 그러해서 더한 것도 같다. 어지간한 전망이 없으면 집을 공개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연예인의 삶을 걱정하다가 잠깐 현타가 왔다.


어릴 적 나에게 전망이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등장하는 단어였다. 전망 있는 전공, 전망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였다. 실제로 전망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였다. 탁 트인 전망과 같이 경치를 이르는 말이면서 장래의 상황을 내다보는 인구전망에도 쓰이는 말이다. 나의 세대에게 전망은 후자이지만 요즘의 아이들에겐 전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의 세대는 왜 미래전망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전망에만 꽂힌 것일까? 미래전망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미래전망이 뻔해서일까?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 전국석차 1등에서 3천 등까지 예외 없이 의대에 진학하는 나라에서 무슨 미래전망을 고민할 일이 있겠는가? 미래에 대한 선택의 고민 따위는 필요 없는 천편과 일률의 사회가 아닌가? 그러니 눈호강이라도 하려는 거겠지.


이런 서글픈 생각이 들면서 전망이란 전도유망의 다른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망의 동음이의어에는 전부 망한다(亡)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쉰을 넘긴 내 삶을 돌아보아도 미래가 잘 안 보이는데 누가 미래를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제 간 창신동 맛집의 이름은 '창창'이었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이들에게 미래가 창창하다고 하지 않던가. 이때 쓰는 창창은 푸르다는 뜻이었다. 창신동 창창에서 식사를 하며 내 아들의 창창한 미래가 걱정되었던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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