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만 잃어버리는 몹쓸 버릇

운명의 장난일까?

by 낙산우공

사람마다 성격이나 성향이 다르듯 물건을 다루는 것도 제각각이다. 나의 작은 형은 무슨 물건이든 험하게 다루고 금세 고장내기 일쑤였다. 잃어버리기도 잘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내 딸아이도 그런 면이 있어 이것도 유전자의 장난인가 싶었다. 나는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편이라 잘 잃어버리지도 않고 꽤 낡을 때까지 오래오래 쓰곤 한다. 내 아들도 그런 면이 있어 제 누나의 험한(?) 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한 물건을 20년 넘게 쓰기도 하지만 가끔씩 아주 황당하게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것도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소중한 것들을 말이다. 그렇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물건이 몇 개 있는데 최근에 그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것 같다. 3일 동안 열심히 찾고 있는데 도무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건을 잃어버린 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물건을 찾으려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기어이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것이 맞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혹시 어디에서 떨어뜨렸을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억을 돌이켜 보았고 의심이 드는 모든 곳을 뒤져 보았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오늘 아침에는 커피도 내리지 않고 집을 나와 물건을 잃어버린 날로 추정되는 지난주 목요일 저녁 나의 동선을 모두 훑었지만 온데간데없었다. 설령 그곳에서 잃어버렸다 해도 누군가 주어갔을 것이 뻔하였다.


그 이유인지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우울하다. 50대가 되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이라면 문득문득 주체하기 어려운 우울감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내 아이가 3년째 겪는 우울감이 이런 걸까? 아니 그보다 더 하겠지. 그 녀석이 먹는 우울증 처방전을 보는 의사들마다 놀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2년 전부터 병원을 옮기고 약이 많이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랬다.


아무튼 나는 오늘 오전 내내 우울하고 이 우울감이 오후에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어제 하루를 통으로 날렸기 때문에 오늘 남은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일이라는 시간도 있지만 아마도 하루 만에 해치우기 어려운 업무량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오후에 반절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 건 내 깊고 깊은 우울감이 어떤 것도 시작할 수 없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지난 주말부터 상태가 안 좋았던 반려견이 응급수술(결석)을 받은 날이고 급격한 체중증가로 여기저기 신체증상을 호소하던 아들이 정밀건강검진을 받고 지방간 판정을 받은 날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는 3년째 우울증 투병 중인 아들이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준 가죽 담배케이스를 불과 석 달이 안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우울하지 않다면 나는 아빠가 아니다. 잃어버린 가죽케이스를 찾지 않는 한 나는 담배를 끊어야 한다. 그게 운명의 장난이었다면 나는 그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나는 담배의 힘도 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약 따위에 의존하지 않기를... 다 이겨 내기를... 이렇게 터무니 없이 바라니 우울할 수밖에… 심지어 나는 아들 작품의 사진조차 남기지 못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