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에 대한 소회

땅을 딛기 위해 발바닥은 열일을 한다.

by 낙산우공

발바닥은 언제나 땅을 향하고 있다. 앉거나 누워 있을 때를 빼곤 늘 그렇다.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은 중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래서 넓고 튼튼한 발바닥이 땅을 딛고 균형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생활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발바닥이 하얀 이유는 감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삼국지 조조의 말처럼 발바닥은 숨김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발바닥은 정직하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눈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발바닥은 사실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가끔 이 발바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발바닥은 날개가 없는데 간혹 허공을 헤매고 있을 때가 있다. 왜 그런가? 발바닥의 잘못이 아니다. 인간의 허황된 마음이 발바닥을 공중으로 띄워버린 것이다.


인간의 허영심이 발바닥을 날개로 만들지언정 발바닥도 인간의 몸도 허공에 뜰 수는 없다. 발바닥은 여전히 땅을 딛고 있는데 우리는 가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쿠션감이 좋은 명품 신발도 발바닥의 감각을 지울 수는 없는데 어째서 인간은 자신의 발바닥이 땅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는 걸까? 사악하고 간교한 인간의 뇌가 하는 짓이다.


발바닥은 늘 혹사당한다. 그래서 가끔 발바닥 마사지와 같은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1년 365일 쉬지 않고 인간의 육중한 몸을 지탱하는 발바닥에게 마사지 따위가 호사가 될 리 없다. 현실의 무게를 잊고 싶어 지거나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을 때 나는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하곤 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 내가 처한 상황을 제아무리 외면하고 싶더라도 그 현실을 부정할 수 없을 때 발바닥의 느낌은 내게 묵직한 울림을 주곤 했다.


발바닥은 하얀 속살을 양말과 신발 속에 꽁꽁 감춘 채 지독한 발냄새를 묵묵히 견디며 발을 옮길 때마다 느껴져 오는 중량감을 온몸으로 감당해 낸다. 그 발바닥의 고충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답답한 현실일지언정 외면하고 도피할 수 없었다. 우울증 약물 치료 3년에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아들의 하소연을 들었을 때도 나는 발바닥을 떠올렸다. 그러나 아이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이가 느끼는 현실과 꿈의 흐릿한 경계가 이 아이로 하여금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경계가 또렷해지는 날 발바닥의 힘을 느껴주기를 막연히 바랄 뿐, 아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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