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위로
젊은 아이들의 달달 로맨스 드라마에는 당최 적응이 안 되어 평소 딸아이와 공감대가 꽤 넓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장르에서는 영 공통분모가 찾아지지 않았다. 물론 30년이 넘게 차이가 나는 세대 간에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드라마, '미지의 서울'... 딸아이가 보는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그저 요즘 젊은 아이들이 공감할 이야기일 거라 생각하고 무심코 넘겼던 이 드라마가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한가해진 요즈음 다시 1화부터 정주행 하다가 깨닫게 된 사실은 내가 '나의 아저씨'만큼이나 이 드라마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미지의 서울'로 이어지는 내 드라마 편력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게다가 이번 드라마는 연령대가 나와는 너무나 어긋나 있었기 때문에 더했다. 주인공은 고작 서른 살의 청춘들이었다. 그렇다고 시대적 배경이 나의 젊은 시절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 세편의 이야기 사이에 어떤 닮은 꼴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처음엔 작가의 감성에 꽂힌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세 번째 작품은 작가도 달랐다.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남녀 간의 이야기였다. '나의 아저씨'는 누더기 같은 삶을 묵묵하게 버티어내는 40대 남자와 끔찍한 사건과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는 20대 여자의 이야기다. '나의 해방일지'는 대한민국의 주류적 삶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변두리의 젊은 여자와 화류계(?)에서 성공했지만 욕망이 분출하는 어두운 세계에 지쳐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미지의 서울'은 신체적 결함과 정신적 결핍을 안고 사는 남녀의 이야기다.
분명한 공통점이 보였다. 주인공 모두 마음 한구석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며, 대한민국의 강박적인 사회 분위기를 기준으로 완벽한 비주류들이었다. 로맨스그레이는 모르겠고 젊은 청춘들의 연애감정에 공감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과도하게 황폐해진 나에게 일어난 몰입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매력이 클 것이다. 그래도 그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몰입했던 드라마들 간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 각자가 안고 살아가는 삶의 우여곡절(?)에 대하여 그들은 서로에게 공감했고 서로를 위로했다.
내가 여느 로맨스 드라마와 이들을 구분했던 기준이 여기에 있었다. 로코니 연애물이니 하는 젊은 친구들의 트렌디한 드라마에는 영 눈이 안 가던 내가,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나 '나인퍼즐' 같은 장르물이나 가끔 보던 내가 이들 드라마에 꽂힌 이유는 공감과 위로였다. 그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간에 서로에게 공감할 줄 알았고 그래서 서로를 위로할 줄 알았다. 나는 그게 아름다워 보였다. 인간 사이에 공감과 위로를 능가하는 감정의 교류가 있을까?
어릴 적 사랑이란 감정을 잊어버린 지 오래되어버린 내가 사랑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 그것이 내겐 사랑이었다. 그런데, 내가 공감과 위로를 드라마에서나 받고 있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인가? 그것이 어디 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