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명수를 보면 짠해지는 이유는 뭘까?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프로그램과 함께 태어나 유년기를 동행했던 탓일까? 열아홉 번째 생일을 앞둔 아들은 요즘 부쩍 유튜브를 통해 무한도전을 다시 돌려보고 있다. 나 역시 퇴근 후에 저녁식사 때마다 이 프로그램을 봐서인지 10여 년 전에는 챙겨보지 못했던 회차까지 덩달아 섭렵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유독 반복해서 보는 회차가 있으니 그중 하나가 '명수는 12살'이다. 나 역시 처음 방송으로 접했을 때부터 좋아했던 코너였기에 즐겁게 시청을 하고는 있지만 이제 열 번도 더 돌려본 것 같아 좀 물리는 감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왜 이 방송에 유난스레 반응했는지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중년 남자에게 이만한 추억팔이가 또 있을까 하는 게 가장 단순한 이유다. 70년대생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도 장난감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골목에 모였다. 집은 좁았고 답답하니 나갈 곳이라곤 골목밖에 없었다. 내 기억으로 동네(서울 변두리)에 해태(해치) 상이 있는 놀이터가 등장한 게 1980년대 초반이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 ' 이 노래는 분명 나의 동년배만이 기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놀이들의 공통점은 좁은 골목에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해가 질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고무줄, 돌멩이만 있으면 충분했다.
이 시절이 나의 세대에겐 추억이겠지만 내 아이 세대에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오징어게임'과 같이 그저 생소하지만 독창적이고 재밌는 놀이들에 대한 호기심일까? 나 역시 과거에 대한 향수만일까? 그렇지만 이 방송을 보는 내내 나는 명수에게 빙의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골목에 모인 아이들은 놀이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치 찬란한 자랑질과 짓궂은 장난질로 거침없이 뒤엉킨다. 그 와중에 볼품없는(?) 12살 명수는 겉돌았다. 그 겉도는 명수가 나는 눈에 밟혔다. 거기에는 내 어릴 적 모습도 있었고 내가 애써 외면한 다른 친구들의 모습도 있었다. 내 유년시절의 골목은 결코 어린이집, 유치원의 놀이터가 아니었다. 그곳은 또 다른 생존의 현장이었다.
그것이 나의 해묵은 감정을 소환했고 나는 한낱(?) 예능의 탁월한 관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명수는 12살'을 돌려보는 내 아이에게도 나와 비슷한 감정이 올라오고 있는 걸 느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이는 초등학교 시절 당했던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까놓고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지난 3년의 우울증 치료 덕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의 기억을 더듬어 들어주는 일에 서툴다. 사실 힘겹다.
하물며 아무것도 모르던 유년시절 골목놀이에도 나는 쓰라린 내 아이의 깊은 상처까지 얹게 되었으니 힘겹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시절 12살이었던 명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