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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호두

2025. 7.23.

by 낙산우공

2020년 10월 초하루는 추석이었다

너를 볼 생각에 우리는 서둘러 처가를 나섰고

생후 두 달을 갓 넘기고 전날의 예방접종 후유증이 가시지 않아 연신 고개를 떨구던,

그 모습이 눈에 밟혀 끝끝내 망설이는 엄마를 반강제로 설득해 냈지


집에 오자마자 너의 강력한 존재감은 숨겨지지 않았다.

입시로 여념이 없던 아이들의 힘겨운 새벽을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하면서

소파에 웅크리고는, 허겁지겁 아침을 해결하는 딸아이를 그윽이 지켜보던 너를

우리는 할머니라 불렀어


심각한 유전질환으로 병원과 약을 달고 살았고

복부 절개만 네 차례나 해야 했던 가엾은 아이

맛난 음식도 먹이지 못해 매일매일 건식사료에 가뭄에 콩 나듯 간식으로 너를 달랬던

우리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펫로스증후군이라던데

건강 탓에 좋아하는 음식조차 못 먹인 게 못내 가슴에 남는다던데

이제 겨우 5년을 산 너와 앞으로 10년 이상 함께하고 싶은 건

우리의 욕심일까?


여린 눈빛과 달리 빛보다 빠른 앞발 덕에 유난히 도드라진 갑빠

뇌쇄적인 엉덩이와 꼬리

그리고 걸을 때마다 뒤뚱거리던 넥카라


우주왕자 아이쿠를 닮은 너의 넥카라는 틈만 나면 생식기를 핥는 몹쓸 버릇을 고치려다가

너의 치명적인 시그니처가 되어버렸지

첫눈에 백조를 연상시키는 외모와 달리

온갖 지저분한 것을 핥아대서 생긴 별명은 땅그지


언제나 반전 매력으로 온 가족을 쥐락펴락하던 너의 이름은

호두 호댕이 임호두 호두식 아가새끼 엄석두 그리고 퐁듀 아닌 호듀

너는 늘 자신의 이름을 헷갈릴만했지


이제 다섯 해를 함께 했는데 너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건

무슨 조화일까?

호두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년만 더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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