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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걱정이란 없는 세상

확률 제로에도 방심할 수 없는 사회

by 낙산우공

쓸데없는 걱정을 '기우'라고 부른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봐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이라는데, 이렇게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을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이를 때 쓰는 표현이다.


나는 평생을 남들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을 지나치지 못해 피곤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 나의 기질이 과연 삶을 피곤하고 어렵게만 했을까? 과거엔 예민하고 걱정 많았던 내 성격이 싫었다. 적당히 무디고 불필요한 일에는 신경을 끄고 살고 싶은데 천성적으로 그게 되지 않으니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소모적인 일들에 에너지를 낭비하니 얼마 되지 않는 열정마저 꺼트려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세상에 쓸데없는 걱정이 있을까? 걱정거리를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들의 자기변명에서 나온 말은 아닐까? 하늘이 무너질 리 없고 해가 서쪽에서 뜰 리가 없다고 당신은 무엇으로 확신하는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앞으로도 그러리라 자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류의 발전은 이런 쓸데없는 걱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들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이, 추구하는 것이, 내 삶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건 끊임없는 걱정과 불안의 결과물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몸이 가는 대로 마음이 향하는 데로 사는 삶을 어떤 철학자는 막사는 것이라고 했다. 되는대로 하던 대로 그저 관성의 힘에 몸을 맡기는 삶을 나는 극도로 혐오했다.


언제나 나의 선택과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원인과 결과를 살피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던 습관은 나를 들들 볶는 기제였지만 그 기질 덕분에 인류는 멸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등도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의 병역판정검사장에서 대기하는 내 심정은 설명이 어렵다.


공황발작 때문에 혼자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못하는 아이가 물경 80명의 동년배 아이들 틈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과각성 상태에서 졸도할 것 깉은 때가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상담선생님께 교육받고서야 비로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이 끔찍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 19세 남자아이를 병역기피자로 내몬다.


법령과 규정을 뒤지고 병무청 상담센터를 귀찮게 하면서 나는 모든 준비를 해줬지만 아이는 며칠째 불안에 떨었다. 응급상황 시에 필요한 연락처를 남기고 보호자 대기실 한편에서 떨고 있지만 내 아이는 또다시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저녁 아무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이라고 아이를 혼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걸 못해서 아이가 3년 넘게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지금부터 2시간 반동안 나는 온갖 쓸데없는 걱정으로 발을 구르며 아이를 기다릴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응원이라고는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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