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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간 편한 삶이 내게 허락될까?

by 낙산우공

어떤 부모도 자녀의 불행 앞에서 행복할 수 없다. 즐거울 수 없으며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내 아들은 950일째 우울증 투병 중이다. 많이 밝아졌고 조금씩 자기만의 일을 찾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약물의 도움 없이는 하루를 버텨내기 어렵고 주 1회 심리상담이 없으면 한주를 편하게 마무리하지 못한다. 한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PTSD 상담을 통해 조금이나마 내려놓아야 비로소 주말을 맞는다.


그런 삶이 자리를 잡은 것도 2년이 다 되어간다. 2년간 아이는 매일매일 나아졌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삶을 평범하게 살아내지 못한다. 혼자서 집 앞 산책을 하지 못하며 대중교통을 홀로 이용하기 어렵다. 아주 가끔 시도하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마음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먹은 바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첫 학교폭력을 경험하고 장장 7년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이니 똑같이 7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겠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아니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믿었고 나는 조급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 것이 참으로 어리석고 철없는 생각인 줄을 이제야 알았다. 아이가 본격적인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 지 이제 2년 반이 조금 넘었고 나는 앞으로도 4년 이상 이 아이를 돌볼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이미 2년 넘는 시간 동안 무료하게 삶을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용기도 그동안 하던 것을 보다 본격적으로 해 볼 체력도... 끝으로 그럴 의욕도 아이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우울증은 그런 것이었다. 이 아이가 아무리 원대한 꿈을 갖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 하여도 아이의 병은 스스로 일어나기 어렵게 체력과 의욕을 꺾어놓았다. 그리고 나면 아이에게 남는 건 당연히 절망이었고 몹쓸 충동(?)이었다. 어제저녁 주말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철없는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일도 딱히 할 일이 없는데 왜 월요일을 맞는 걸 싫어하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아이는 월요일 아침의 텅 빈 거실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던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모두 각자의 일을 위해 집을 떠나 바쁘게 살아가는데 자신만 홀로 무료함을 이기려 온갖 것에 마음을 붙이려 하는 스스로가, 그렇게 살아온 지난 2년여의 시간이 못 견디게 괴롭고 한심했던 것이다. 1년 전부터 가죽공예를 배우며 미래를 꿈꾸지만 주 1회 3시간만 작업을 하고 나면 아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공방에서는 열정과 소질이 보이는 아이를 좀 더 가르치고 싶어 했지만, 아이도 그러고 싶어 했지만 몸이, 그리고 무력감이 아이에게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아파트 옆동에 사시는 할머니집에서 보낸다. 무료한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게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는 것 같아 나는 꽤나 마음을 놓고 있었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댁에는 매일 오시는 요양보호사님이 계신데 그분도 칠순 노인의 몸으로 내 아이를 귀찮아하지 않고 각별히 대해 주셔서 항상 감사하였다. 그런데 며칠 전 아이를 통해 요양보호사님의 50 먹은 큰아들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가슴이 먹먹해져 버렸다.


요양보호사님의 큰아들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 피해로 우울증이 시작되어 20년 동안 집안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은둔자로 지냈다고 한다. 40이 되어서야 조금씩 바깥 활동을 하기 시작한 그 아드님이 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책을 한 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님은 그 30년 넘는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셨을까? 존경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제법 똑똑했던 큰아들을 위해 없는 살림에 사립초등학교를 보내셨다는데 그 아이가 대학도 못 가고 20년 세월을 방 안에서 보내는 모습을 어떤 심정으로 참아내셨을까 생각하니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7년이건 20년이건 내 아이에게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요양보호사님처럼 이 아이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다짐 외에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오늘부터 아이와 운동을 하기 위해 시차출퇴근제를 하고 있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안타까운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1시간 먼저 퇴근하여 함께 운동을 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아이는 지난주부터 기대에 찼다. 아빠와 함께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해서 예전의 몸과 체력을 회복하면 또 조금은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지 않겠는가? 덕분에 나의 중증 고지혈증도 씻은 듯이 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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