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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고 볶다가 알게 된 것들

생활의 달인은 생활 속에서 탄생한다.

by 낙산우공

아라한장풍대작전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 구석구석에 숨은 도인(?)들이 많다는 것. 초능력이라고 부름 직한 놀라운 퍼포먼스를 시전 하는 그들을 보면서 삶에 대한 통찰은 생활 속에서 터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탄생한 방송프로그램이 생활의 달인이 아니던가.


53년을 살면서 깨닫게 된 건 나의 53년이 내내 지지고 볶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 유년기, 청소년기, 청장년기, 중년기를 불문하고 내 삶은 내내 지지고 볶이었다. 그 아웅다웅, 이전투구의 삶이 지긋지긋하게 싫었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지지고 볶는 현실을 넘어서지 못했다. Beyond는 내게 닿을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터득되는 것도 있으니 생활의 달인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는 게 분명하다. 시장에서 꽈배기를 수백 개씩 꼬는 달인은 어떻게 하면 원가대비 맛과 품질이 뛰어난 꽈배기를 대량으로 뽑아낼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들의 놀라운 속도는 대부분 어마어마한 시행착오의 결과물인 것이다.


지지고 볶다의 사전적 의미는 세 가지다. 첫째 사람을 들볶아서 몹시 부대끼게 하다, 둘째 머리털을 곱슬곱슬하게 만들다, 셋째 희로애락을 서로 나누며 한데 어우러져 요란하게 살아가다. 나의 지지고 볶는 삶은 아마도 세 번째 의미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사전을 찾아보고야 알았지만 삶에서의 지지고 볶다의 의미는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요란하게'라는 단어를 빼고 나면 얼마나 좋은 의미인가?


사실 지지고 볶다는 말 그대로 무언가를 지지고 무언가를 볶는다는 뜻이다. 즉, 요리과정에서 등장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지고 볶다의 사전적 의미에는 이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본래의 의미는 각각 '지지다'와 '볶다'에 담겨 있을 것이고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는 지지고 볶다는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지거나 볶는 것이 아니라 지지고도 모자라 볶기까지 하니 다른 의미를 파생시킬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도 25년 차에 접어들고 나니 내게 생긴 변화가 하나 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누군가의 상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나는 조직 내에서 높은 자리에 있지도 않으며 대단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왜 동료들은 내게 조언을 구하려 하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지위고 그들의 고충을 잘 이해해 주는 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지지고 볶여온 25년의 삶이 그들에게 가끔씩 큰 도움을 주는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의 조언에 감사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별로 해 준 말이 없는데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의아할 때가 있었다. '충. 조. 평. 판'은 대한민국 꼰대의 상징이 되었는데 어찌 나에겐 해당하지 않는 것일까(착각?)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나의 조언은 대부분 그들이 겪는 상황에 대한 해석에 가까웠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해석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참고가 되는 거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나의 지지고 볶여온 삶을 벗어나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내게 쌓인 내공이라고는 지지고 볶여온 경험뿐인데 그게 의외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장소가 직장이건 가정이건 다른 인관관계이건 간에 분명히 내게 남는 건 지지고 볶인 결과였다.


그런데 이것이 내게 자산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나는 지지고 볶일 때 피하지 않았고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꼼수를 쓰지 않았으며 누군가를 이용하지도 않았다. 온전히 내 온몸으로 지지고 볶임을 당했기에 내게는 수도승의 '사리'와도 같은 훈장이 새겨진 것이다. 그 기억이 뚜렷하게 내게 각인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게 쌓인 내공을 이제 조금씩 꺼내봐야 할 때가 되었다.


지지고 볶이는 과정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 진실들을 이제 하나씩 들여다볼 때가 되었다. 내 몸에 체득된 달인의 감각을 이제 돌이키고 되새기고 풀어보려 한다. 그게 얼마나 지질하고 부끄러울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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