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야 말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아무도 모른다'를 선뜻 감상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영화감독 지망생 셋째가 마음이 아파 이 영화를 차마 보지 못했다는 대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이후였는지 그전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방치되었거나 아픈 아이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게 힘겹다. 아니 대부분(?)의 인간이라면 그렇지 않을까?
큰애가 서너 살쯤 되었을 무렵, 폐렴으로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매일매일이 아팠다. 그 뒤로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가슴 아픈 사연을 대할 때마다 혹은 그런 사진을 보게 될 때마다 끔찍한 공포를 느낀다. 3년 전 둘째의 간병을 위해 휴직을 감행하고 1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나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새해를 맞아 잔고장이 난 차를 수리하려다가 본의 아니게 이틀 휴가를 쓰고 복귀한 오늘, 밀린 업무를 대충 처리하고 오후 반나절동안 이 무거운 영화를 마주한 건 무슨 생각 때문이었을까? 쉰네 번째 생일이 기다리는 올 한 해가 내게 얼마나 묵직하게 지나갈지 알 수 없지만, 왠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이 영화를 택했다.
역시나 영화를 보는 2시간 20분 내내 나는 너무 힘들었고, 듀얼모니터 덕분에 다른 쪽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며 건너뛴 장면도 꽤 되었다. 영화를 이렇게 감상하는 걸 매우 싫어하지만 이 영화는 내게 밀린 숙제 같은 작품이었고, 나는 사실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을 중단하지 않고 참아내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대략 짐작을 했던 영화의 줄거리는 위대한 감독의 손에서 너무나도 담담하게 빚어져 나를 더욱 힘겹게 했다.
이 영화의 감상평은 남기지 않겠다. 평론가들의 한줄평을 훑어보고 내가 새삼 놀란 것은 어떻게 이 영화를 보고 할 말이 있었는가였다.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이 기억에 남았던 건 그가 영화에 대한 감상을 극도로 에둘러서 말한 것 같아서였다. 평을 남겨야 할 의무가 없는 나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2000년부터 시작한 나의 사회생활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나는 2017년을 기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회적 존재로서 나의 삶은 끝났다. 그 뒤로도 나는 10년째 여전히 일을 하지만 그건 내 남은 임무를 다하기 위한 부차적인 것이다. 나는 2017년 이후 아이들로 인해 두 번의 휴직을 하였고 아직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한다. 내게 일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새기면서 2026년을 보낼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 Image from '아무도 모른다'(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