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라는 약한 고리

걱정과 불안이 잠식하는 세계

by 낙산우공

누구에게나 약을 복용하는 일이 유쾌할 리 없다.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먹는 것일 테고, 맛이 좋을 리 없다. 요즘은 복용하기 편하게 캡슐형태로 제작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여러 종류의 알약을 빻아서 약봉지에 담겨 나왔다. 지금 같은 밀봉 포장도 아니었고 접힌 종이를 펼쳐서 입안에 털어 넣는 방식으로 모든 약을 먹어야 했다.


쓰기는 또 어찌나 쓰던지 물을 잔뜩 머금고 가루약을 털어 넣다가 삼키지 못하고 뱉는 일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어머니의 손바닥이 나의 등판에 꽂혔다. 비싼 약을 버렸으니 우리는 혼이 나야 했다. 나는 정확하지 않지만 서너 살 무렵에 신장에 이상이 생겨 6개월 이상을 누워만 지냈고 삼시 세끼를 흰 죽만 쑤어먹었다. 그런 형편에 약은 얼마나 많이 먹어야 했을까?


나는 지금까지 제아무리 값비싼 전복죽도 먹지 않는다. 장염에 걸려 죽을 먹으라고 할 때에는 차라리 굶고 만다. 그런데 약은 도무지 거부할 방법이 없다. 나이가 들고 나니 몸의 이곳저곳이 시원치 않아서 매일 아침 알약 4개씩을 먹고 있다. 물론 멀티비타민 같은 건강보조제가 대부분이다. 어쨌든 그것들도 내겐 약이다.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서 몇 년간 장복했던 고지혈증 치료제를 끊고 오메가 3와 식이요법으로 대체한 지 벌써 3년째, 생선에서 추출한다는 오메가 3은 비린내가 날 뿐 아니라 크기도 제법 커서 목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먹기도 불편한 약을 몇 번에 나누어 먹기 싫으니 입안에 물을 잔뜩 머금고 네 알의 약을 털어 넣는다. 그리고 목구멍으로 그것을 넘기기 위해 목을 심하게 뒤로 젖히는 동작을 반복하곤 했다.


내 또래에게는 흔한 이 동작이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약 먹는 모습만 보면 까르르 웃으며 목뼈 부러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모습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상상해 보면 아이들의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나는 어릴 적 약 먹는 일에 트라우마가 있었고 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어도 그 기억은 나의 의식과 몸을 지배했다. 요즘도 가끔 약을 먹다가 한 번에 삼키지 못해 구토감을 느끼곤 한다.


사실 약을 삼키지 못하더라도 예전 같은 가루약이 아니기 때문에 큰 탈이 나지 않는다. 입 밖으로 뿜어내는 일은 없다. 예전에는 약을 먹다가 구역질이 나서 식사한 것까지 토해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럴 땐 엄마의 손바닥이 더 사정없이 꽂혔다. 그런데 요즘의 약들은 캡슐형태라 아무 맛이 없다. 구역질이 날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먹을 때마다 나의 걱정과 불안은 내 영혼을 잠식해 왔다. 덕분에 나는 50년간 같은 방식을 고수했다.


가끔 외국 영화를 보면 알약을 혀끝에 올려놓고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마시는 주인공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때마다 나는 무심하게 약을 먹는 주인공이 부럽고 그의 행동이 멋있어 보였다. 그 아무것도 아닌 행위가 왜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까?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나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요즘은 나도 네 알의 약을 무심히 혀 위에 올리고 그냥 물을 마신다. 평소 물을 마실 때와 다름없이 마신다. 이제 목구멍으로 넘겨야 할 어마어마한 양의 알약이 입안에 있다는 사실은 잊게 되었다. 그 일은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설령 한 번에 목구멍을 넘기지 않더라도 어떤 쓴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나는 당황하지 않고 한 번 더 물을 마시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 중에 이렇게 사소하고 하찮은 일은 많다. 그 사실을 곰곰이 생각하고 결론 맺지 않았을 뿐이다. 약을 먹다가 실패한다고 큰일이 나진 않는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으로 지금껏 망설이고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볼 때가 되었다. 나는 그럴 나이가 되었다. 무서운 게 별로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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