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에 산다

휴직일기, +74일(2021. 7. 15)

by 낙산우공

강북에 사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도 그렇다고 자랑스러워할 것도 아니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게 그저 주거의 한 형태일 뿐 어디에 있는 어떤 집이라는 것으로 그 집의 거주자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는 건 제아무리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이라 하여도 수긍할 수 없었다. 강남의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은 강남을 객관적 가치가 아니라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목적으로 설정하고 그야말로 맹목적으로 그것을 욕망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시개발을 통해 건설된 서울 강남 신도시는 바둑판처럼 반듯한 도로망과 각종 인프라, 거기에 8 학군으로 대변되는 독보적인 교육환경이 신기루를 만들어냈고 온 국민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강남, 서초, 송파라는 주소지만으로 우리는 성공에 한발 짝 더 다가갔다는 착각에 빠져 지옥 같은 교통체증과 온갖 쾌락과 유흥의 중심이라는 오명쯤은 거뜬히 잊고도 남았다. 아니 그 사실을 오히려 명성에 걸맞은 결과라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마포구에 직장을 둔 내 형은 몇 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대치동에 있는 집으로 가는데 장장 4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들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를 위해 무리를 하여 대전(대치동 전세) 시민이 된 직장 동료는 이사가 늦어져 원하는 학교에 배정이 어려워지자 다시 오피스텔을 월세로 얻고 위장 전입하여 원하는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레 떠벌렸다. 강남은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고 남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그들에게는.


나는 강남을 혐오하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종종 그곳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압구정 모아파트 평당 가격이 1억 원을 돌파했다는 뉴스에 흥분하지도 않는다. 뉴욕 중심가에 비해 강남 부동산 가격이 정상인지 아닌지에 핏대를 세울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어차피 나와는 무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의 학원, 병원, 무용 샵 등에 들르기 위해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평일 낮의 끔찍한 트래픽이 두렵고 최선의 동선을 찾기 위해 고심을 할 뿐이다. 10여 년 전 테헤란로에 있는 직장에 다닐 때에는 외근을 나가면 절대 사무실에 복귀하지 않았다. 외근에 두 시간 복귀에 세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물론 강남의 지하철을 이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강남은 교통천국이다.


강북에 사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공연히 강남 얘기만 길어졌다. 나는 같은 동네에서만 14년째 살고 있으며 나름 만족하고 있다. 4대문을 벗어나면 험산준령이 즐비한 서울의 강북은 평평한 자리를 찾기 어렵다. 그런 자리는 이미 나름대로 고급 주택가가 자리 잡고 있어서(지금은 다가구 주택가로 변했지만) 강북 아파트라면 대부분 낙후된 산동네를 재개발한 곳이다. 성동구의 금호동, 응봉동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나마 이곳은 한강과 가깝고 강남과 마주 보고 있으니 비싼 곳이다. 우리 집은 성북구 낙산 자락의 재개발지구다. 낙산 꼭대기가 해발 124미터라고 하니 우리 집은 적어도 해발 100미터는 될 것이고 거기에 무려 10층이니 낙산 정상의 유명한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끔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오면 초행인 기사분들이 많이 놀란다. 이런 곳에도 아파트가 있네요? 하고 물으면 네, 이런 곳에 아파트가 있더라고요. 하고 자연스레 되받아준다. 높은 곳에 있어 불편한 것도 많지만 난 싫지 않다. 2천 가구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를 투자가치로는 높게 치지만 난 단출한 아홉 동 377세대만 모여사는 우리 집이 더 좋다. 물론 살기에 그렇다는 거다. 혜화문(동소문) 바로 밖에 있어 대학로가 지척이고 유명한 성북동 국수거리가 코앞이다. 면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란 없다. 내 취향을 닮아가는지 아이들도 아내도 오르내리는 수고를 빼면 주거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렇게 값비싼 아파트가 즐비한 강남은 나에게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었다. 강남의 교육환경이란 것이 대개 높은 교육열로 무장한 부모들이 모여들어 그에 따라 자연 발생한 시장이기 때문에 그 교육환경의 수혜를 온전히 받고자 할 의지가 없었던 나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일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4대문 안에 유명한 맛집들은 대부분 강남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원조집을 갈 수 있다는 것도 우리 집 만의 장점이라 여겼다. 특히 구도심은 나름대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복잡한 난개발로 어수선하던 동네마저 갑자기 화제가 되어 뜨는 일도 많다. 낙산 성곽을 끼고 있는 이화동 벽화마을, 삼선동 장수마을은 드라마, 영화의 단골 촬영 장소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고 내가 강북 예찬론자는 더더욱 아니다. 강북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고 그만큼 주거환경이 열악한 것은 분명하다. 서울 외곽의 수도권 신도시에 짧게 살아본 경험에 비추어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거리에는 곳곳에 세워진 전봇대에 오만가지 케이블이 복잡하게 엉켜 있으며 꼬불꼬불 구비구비 골목들은 차 한 대 지나가기도 아슬아슬할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너무나 잦은 보수공사였다. 주말이면 거의 항상 좁은 도로 한 차선의 통행이 차단되었으며 평일 밤에도 상하수도 공사에 전기공사에 거대한 레미콘 트럭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신도시나 택지개발지구는 도시계획에 따라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도로가 뚫리고 그 밑으로 모든 도시를 구성하는 배관이 설치된다. 당연히 길거리에 전봇대는 찾을 수 없으며 상하수도 공사로 수선을 떠는 일도 없다. 노후배관에 수돗물 색깔이 노래지는 일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나의 첫 집은 재개발지구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욕실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심각하여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냄새가 이사를 부추기는데 일조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휴직을 한 지 3개월째, 낮이고 밤이고 도로는 성할 날이 없다. 이렇게 덥고 습한 날 도로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짜증을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을 쉬기 힘든데 저러다 분명 쓰러지는 이가 나올 법하다. 부동산 가격을 매기는 기준은 철저하게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감정평가에 문외한인 나의 눈에도 강남과 강북의 차이는 확연하였다. 그 차이를 능가하는 거품이 얼마나 끼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 불편을 감수하면서 나는 강북에 산다. 나의 불편이 누군가의 눈에 처량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였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바로 부끄러워졌다.


나는 항상 내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 지질해 보일까 하는 걸 의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끝끝내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의 감상,

도시의 도로가 자주 뜯겨나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자체의 과도한 예산운영이다. 연말마다 남은 예산을 털어 넣기 위해 공사가 집중되어 매번 지적을 받아왔기에 그 시기가 앞당겨진 느낌이다. 최근 석 달간 우리 집 주변에서 이루어진 보도블록 교체와 아스팔트 포장공사는 관할 행정구역을 달리하여 족히 네 곳이 넘었다. 낙후된 도로환경 개선인지 지자체의 전시행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 대대적인 작업이 끝나고 오늘은 대대적인 상하수도 공사로 그 길이 다시 뜯기고 있었다. 예산낭비는 둘째치고 주민들의 불편도 무시하더라도 뙤약볕에 노출된 인부들을 쳐다보기 어려웠다. 그분들의 목에는 헤드셋처럼 보이는 휴대용 선풍기가 걸려 있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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