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일이 남다.

휴직일기,+80일(2021. 7. 21)

by 낙산우공

휴직한 지 80일이 지났고 복직까지는 정확히 222일이 남았다. 친절하게 날짜를 카운트해주는 어플 덕분에 매일 자정이 되면 나는 숫자의 마법에 빠진다. 302일의 절반인 151일까지는 71일이 남았으니 이제 두 달이 좀 넘으면 휴직의 반환점을 돌게 된다. 골든 크로스가 머지않은 셈이다. 살짝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제법 휴직의 맛을 알아버려서 인지 모른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한창 바쁜 시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휴직을 했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느긋한 마음으로 직장의 소식을 간간히 듣는다. 아무튼 2022년 2월이 지나면 나에게 남은 222일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중간점검이 필요할 것 같은 마음에 펜을 들었다.


남은 날을 세는 것과 지난날을 헤아리는 것 중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두 가지를 모두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남은 날이 줄어드는 것도 지나온 날이 늘어가는 것도 무엇하나 마음이 편하지는 못했다. 숫자에 민감한 성격 탓도 있지만 막연하게 시작했던 300여 일의 휴직기간 동안 무언가는 건질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열 달의 휴직에서 나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지 혹은 심신의 안정을 찾을지 그도 아니면 횡재라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대개 막연한 기대는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꽤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온 큰애와 둘째는 이제 부정적인 두려움을 넘어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눈치지만 말이다. 그 데드라인의 시간이 나에게도 예외일 리는 없다. 그렇게 다소 다급한 마음에 지나온 80일을 정리해 보았다.


변화를 추구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외형이다. 그래서 나는 체중감량을 한 가지 목표로 정하였다. 매일매일 꾸준히 근력운동과 요가, 명상을 병행하다 보면 10%의 감량 정도는 아주 손쉽게 해낼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휴직 전 체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획대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편이지만 간과한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엄청나게 줄어든 나의 일일 활동량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두 아이의 입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루 열량 소모는 직장에 다니던 시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하루 천보도 걷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염이 시작된 이후 반려견과의 산책도 포기했다. 오전마다 플랭크 운동과 요가 스트레칭을 가볍게 하고 있으나 나의 즐거운 저녁 식사량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다만 삶의 패턴이 단순화한 탓인지 체중의 기복은 없어졌으며 직장에 다닐 때 가장 가벼웠던 체중을 현재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다. 급하게 체중을 줄여봐야 요요가 올 것이기 때문에 나는 두 달 간격으로 1킬로그램씩 감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그렇게 줄어든 체중을 유지할 수 있는 운동량과 식사량을 맞추려고 한다. 복직 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난 과격하게 운동하지 않으며 대신 먹는 량을 줄이고 있다. 식탐은 없는 편이지만 먹는 걸 즐기는 탓에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어렵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며 줄어든 욕망은 식욕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체중감량 프로젝트는 순탄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목표 체중에 수렴할 것 같다.


다음으로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일... 휴직 초기에는 다사다난했던 지난 연말연시의 사건사고들이 겹쳐지면서 쉽게 평온을 찾기 어려웠다. 꿈자리도 사나웠고 문득문득 옹졸한 분노의 감정이 불쑥불쑥 솟구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시간을 능가하는 보약은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하늘이 무너지는 시련의 아픔도 결국 시간을 이기지는 못하였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나가버리듯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인물들이 소리 없이 퇴장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몇몇 직장 동료들과는 연락을 주고받지만 그들을 통해 전해 듣는 직장의 이야기에 큰 관심이 가지 않는 건 역시 나의 몸이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222일 후에 또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웃집 아저씨의 로맨스만큼이나 흥미롭지 않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아내와 아이들 모두 월요병에 걸려 우울해 하지만 그 마음에 동참하지 못하는 짜릿함은 말로 할 수 없다. 정말로 입밖에 낼 수 없다. 아마도 난 집에서 왕따가 될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 휴직의 직접적인 목적이었던 가사... 난 한 달쯤 전에 앞치마를 장만하였다. 아내는 결혼 후 줄곧 가사노동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 왔지만 한 번도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한 달 만에 그 필요성을 절감하여 온라인으로 앞치마를 구매하였다. 집에 있는 앞치마라고는 모 식료품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준 것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작아서 입고 벗기가 너무 불편하였다. 그래서 꼭 설거지나 요리할 때가 아니더라도 작업할 때 쓸 수 있는 블루진 소재의 앞치마를 입게 되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우연히 성시경(가수)의 앞치마를 보았는데 요리를 좋아하는 그의 앞치마는 나와 같은 블루진 소재였지만 꽤나 낡아 있었다. 나도 몇 년쯤 후면 저렇게 세월의 더깨가 얹힌 근사한 앞치마를 갖게 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들게 만들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나의 직장은 급기야 얼마 전 전 직원을 대상으로 PCR 검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무증상 감염을 걱정하는 동료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더니 그들은 마트에 장 보러 다니는 내가 더 위험하다고 놀려댔다. 요즘은 장보기도 대부분 온라인 주문으로 배달받고 있지만 굳이 그들에게 변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놀림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라도 나를 놀리며 마음의 위안을 받기를 바랐다. 나의 둘째는 내신성적 때문에 예고 입시를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되었으며,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기가 막히게 겹쳐버린 살인적인 폭염에도 우리 아이들은 전담 로드매니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실기 레슨과 학원을 오가고 있다.


여백이 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을 갈망하였던 나는 직장생활 21년 만에 처음으로 무려 10개월의 방학을 누리고 있다. 몸은 바쁘지만, 출퇴근 시간도 없는 가사노동에 메어 있지만 내 삶에서 이만큼 강렬한 여백은 없었다. 삶의 여백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강요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다. 난 자발적 가사와 자발적 육아로 피곤하지만 그 어떤 것도 강요받지 않았기에 자유인이 되었다.




오늘의 감상,

딸아이에게 갑자기 레슨 일정이 30분 당겨졌다는 문자가 온 시각은 새벽 6시 10분이었고 나는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양치도 못한 채 딸아이를 연습홀에 데려다주었다. 9시 전까지 아들을 미술학원에 보내주려면 빠듯한 시간이 었기에 출근길 러시아워 도심 한가운데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집에 돌아온 시각은 대략 오전 9시 20분경이었다. 살인적인 폭염 탓에 빨랫감은 나날이 쌓여가지만 다행히 햇볕은 쨍쨍하다. 두 차례 세탁기를 돌리는 중간중간 플랭크 운동과 요가 스트레칭을 마치고 건조대에 빨래를 널었다. 그 사이사이 로봇청소기를 활용하여 거실과 주방에 물걸레질을 마쳤다. 출출함을 느끼며 첫끼를 먹고 나니 12시...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해치우고 호두(반려견)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나서 이 글을 쓴다. 조금 이따가 오후 2시 반이 되면 연달아 세 클래스(총 6시간)의 무용실기 레슨을 마친 딸아이를 데리러 다시 나가야 하고, 오후 5시 반에는 하루 13시간 미술학원에 있는 아들의 저녁을 챙겨가야 한다.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차를 타고 있지만 한번 가득 채우면 2주는 가던 휘발유는 이제 한주를 간신히 버틴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휘파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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