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한 항변(2017. 11. 24)
안녕하십니까? 저는 2학년 1반 OOO 학생의 아비입니다.
저희 아이는 최근 발생한 학교폭력 신고사건의 관련 학생으로 지목되어, 일련의 사안 처리 과정을 거쳐 얼마 전 ‘조치 없음’이라는 자치위원회의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아이와 함께 겪으며 몇 가지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어 어렵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이는 학교폭력 신고사건과 관련하여 어떠한 행위에도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학교의 사안조사 과정에서 명백하게 밝혀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아이는 신고 학생의 지목이 있었기 때문에 자치위원회에 출석하여 진술을 해야 했습니다. 저를 더욱 당황스럽게 하였던 것은 당초 자치위원회 출석 통보 시 저희 아이가 연루되었다고 기재된 2건의 사안 중 첫 번째 언어적 폭력과 관련된 사안은 당일 자치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일 자치위원회는 두 번째 사안인 신고 학생에 대한 사과 과정의 진정성 부분만 사실관계를 확인하였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학교 측에 항의한 내용이지만, 학교폭력 또는 그에 준하는 행위로 의심되는 가해행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였다는 것으로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 회부될 수는 없습니다. 사안조사 과정에서 특정조차 되지 않았던 저희 아이의 동조 행위가 자치위원회 논의에서 제외된 것은 학교 측에서 잘못을 자인한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 사안이 논의에서 배제된 것만으로 저희 아이의 자치위원회 출석에는 심각한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은 법적 근거에 따라 진행되는 준 사법적 절차입니다. 따라서 형사사건에 준하는 권위를 가지며,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관련 학생에게는 형사사건의 피의자와 같은 낙인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만큼 학교의 처리과정은 신중하고 엄격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학폭 사건 신고 접수 후 일련의 과정에서 교육부의 사안 처리 지침을 상당 부분 위반하였으며, 그 위반한 내용 대부분이 관련 학생 및 보호자의 권익과 관련된 사항이었습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3조에서는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국민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법률의 해석·적용을 알기 쉽게 해설하여 놓은 것이 교육부의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입니다. 따라서 동 가이드북의 지침을 위반한 것은 학폭법 제3조의 주의의무 위반에 해당됩니다. 그로 인해 학폭 사건의 관련 학생인 저희 아이의 권리는 부당하게 침해되었습니다.
제가 당일 자치위원회 최후 진술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법과 제도가 공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가 일부 제한될 수는 있지만, 그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숙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그렇게 부당한 처리에 대해 피해를 구제하고 지위를 회복하여 주는 제도와 절차가 있습니다. 저희 아이는 신고 학생으로부터 가해학생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법에서 정한 절차에 성실히 응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부당하게 권리가 침해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제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그 피해를 보상받고자 합니다.
제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학교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고 학생에 대한 것입니다. 학폭 사건을 일반적인 형사사건의 처리와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가장 유사한 경우라고 생각되어 일부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신고자에 의해 형사피의자로 지목된 자가 검찰 조사를 거쳐 기소되었으나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 자신에게 행해진 부당한 권리침해에 대해 두 가지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고한 사람을 허위로 신고한 신고자에게 무고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피의자에게 어떠한 혐의도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기소한 검찰의 공소권 남용입니다. 이 두 가지 책임은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받은 무고한 피의자의 신원을 회복하여 주는 수단입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학교는 첫째, 교육부의 사안처리 지침을 위반하여 부당하게 저희 아이와 보호자의 권리를 침해하였습니다. 특히, 사안조사 과정에서 명백하게 학폭 사건에서 분리되어야 하는 제 아이를 자치위원회에 출석시킴으로써 불명예스럽게 재판정에 세우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이 사안은 말씀드렸듯이 학폭법 제3조 주의의무 위반, 그리고 그 위반으로 인한 권익침해로 나누어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이의 제기할 수 있는 수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 측은 신고 학생의 신고철회가 없는 한 자치위 출석은 불가피한 절차라고 설명하였고, 상급기관과의 협의를 통해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안은 학교 측의 사안처리 지침 위반과 더불어 법의 제정 취지에 반하는 유권해석을 내린 상급기관의 책임도 함께 물을 수 있습니다.
모든 제도는 규정화되는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합니다. 이때 제도의 허점으로 인해 제도가 오용 또는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법은 제정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학폭법의 제정 취지와 이번 사건의 처리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는 교육부의 학폭법을 소관 하는 과에 유권해석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발생 가능한 제2, 제3의 피해자를 방지하기 위해 이러한 유형의 사안처리에 대해 해당 부처로 하여금 제도적 보완 차원에서 이를 공론화하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신고 학생에 대한 것입니다. 학교 측은 학폭 사건 처리규정이 모두 피해학생의 보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피해학생은 학교폭력이 특정되었을 때 명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물론 저희 아이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관련 학생에 대한 내용은 제가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신고 학생과 저희 아이 사이에서는 그간 단 한 차례도 일체의 논쟁이 될 만한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반복하지만 사안조사 과정에서 이미 밝혀진 내용입니다. 그리고 사과과정의 진정성에 대한 부분은 진술이 엇갈립니다. 진술이 엇갈릴 경우, 목격자 진술을 확보하는 등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추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번 사안은 그렇게 처리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해행위도 하지 않은 아이가 도의적 책임으로 했던 사과에 진정성이 없었다는 게 학교폭력 논의 안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학교 측은 신고 학생의 일방적 주장에 의해 학폭위가 열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신고 학생의 주장 어디에도 저희 아이와 관련한 사안을 학폭위 안건으로 취급할 만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저희 아이가 받은 정신적 피해는 학폭위 안건으로 처리될 근거가 있습니다. 교육부의 지침에는 허위진술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힌 경우 언어적 폭력에 해당한다고 예시하고 있습니다. 신고 학생이 학폭과 전혀 무관한 저희 아이를 악의적으로 가해학생으로 지목하고, 학폭과 무관한 진정성 없는 사과를 이유로 신고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저희는 해당 학생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사안에 대하여 고대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대응이 소모적인 감정싸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히 ‘조치 없음’이라는 결과에 만족하여 이 사안을 덮어두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학폭법과 그에 따라 시행되는 제도는 제정 취지에 맞게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는 데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간의 감정싸움이나 갈등이 모두 학폭 사건으로 취급된다면 이 제도는 그 실효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학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안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안으로 자치위원회까지 개최된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 측의 방조적 태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치위원회는 법정이 아니고 유·무죄를 따지는 곳이 아니라 학생을 계도하고 훈육하는 교육의 장이라고 말씀하시지만, 학폭위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사안에서 학폭위의 가해학생으로 출석한 아이가 받은 상처와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학교의 조치결과 통보서를 보면 그런 안일한 태도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네 가지 논의 사안에 대해 모두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간 인식의 차에 비롯된 것이기에 ‘조치 없음’으로 결정하였다는 것은, 결국 사소한 아이들 간 다툼과 갈등이기에 각 사안의 경중, 사실관계 확인보다는 양측의 이의 없는 타협으로 적당히 수습하려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허무한(?) 결과가 도출되기까지 관련 학생과 학부모가 감당해야 했던 정신적 피해는 철저하게 간과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모든 사안이 조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은 결국 학교폭력 사건은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치결과 통보서에는 명백히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지없이 저희 아이도 가해학생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저희 아이가 어떤 가해를 하였지요? 그 통보문을 보고 아이는 또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저희 아이와 관련된 사안만 보았을 때 신고 학생이 피해학생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난 한 달 간의 처리과정에서 저희 아이는 엄청난 정신적 피해, 학업 방해 등을 겪었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이번 사안에 대해 신고 학생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는 한 똑같이 학교폭력 사건으로 신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학교가 양측의 중재자로서 제 역할을 다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안의 처리과정을 지켜본 후 학교에 대한 대응 조치를 결정하겠습니다.
부디 또 한 차례 불미스러운 사태가 빚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딸아이는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조별과제로 수행한 UCC 동영상 제작의 촬영을 맡았다. 주인공을 맡은 아이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반복해서 NG를 내자 불만이 쌓여있던 연출 담당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병O같이 그것도 못하냐” 상처를 받은 주인공은 조원 전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였고 우리 아이는 연출이 욕을 하는 순간을 막지 못한 죄(?)로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평소 주인공 아이와 관계가 좋았던 우리 딸은 바로 다음날 손편지를 전하고 연출 아이를 대신하여 사과하였으나 끝끝내 학교폭력위원회에 출두하는 굴욕을 겪었다. 나는 위의 편지를 학교장에게 보냈고 학교장과의 면담을 통해 공식적인 사과를 받았다. 해당 학교는 바로 학교 규정을 개정하여 혐의 없이 억울하게 학폭위에 신고된 학생에 대하여 직권으로 가해학생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우리 아이는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쓰라린 경험을 고작 열다섯에 겪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