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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ul 28. 2021

2020년 11월 9일 월요일 아침 풍경

셋째를 입양하다(2020.11. 9)

출근길 유난히 졸음이 쏟아진 건 주말 끝 월요일이기도 하였지만 새벽의 소동 탓이 크다. 입양한 지 한 달 남짓한 강아지는 엄마 대신에 아쉬운 대로 주인의 품이라도 파고드는 생후 4개월 차 아가다. 아이 둘을 키우는 부모 생활 18년 차,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수월하리라 여기지 않았지만 갓난아이를 감당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것을 깜박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생명의 신비로움이 느껴질 만큼 생동감 넘치는 강아지를 보고 있노라면 축 처진 중년의 삶에 조금은 활력이 된다. 노년에 고된 몸을 이끌고 손주들을 돌보는 이들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이다. 몰티즈의 외모와 푸들의 성격을 타고난 우리 집 아이는 천둥벌거숭이 마냥 때로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 불쌍한 버려진 개처럼 청승을 떨기도 한다. 그 변화무쌍함에 온 가족이 웃을 때가 많지만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가족에 익숙하지 못하다.​


오늘도 이 녀석은 새벽부터 우리의 단잠을 깨우고 난리 법석을 떨어댔다. 강아지가 많은 시간을 수면에 할애하지만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 앞으로도 이 아이의 생체리듬과 적당한 동기화를 만들어내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존재가 달가운 것은 몸은 좀 고달플지 몰라도 이 아이가 뿜어대는 활력과 에너지가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뻔히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은 그 번잡함과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삶의 시간들이 놀라울 정도로 풍요롭게 채워지기 때문이다. 긴 고통과 짧은 희열이 반복되는 삶이 버텨지는 건 제아무리 짧은 행복감이라도 그것이 무엇으로든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삶에 충만감을 줄 수 있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나는 이 방법보다 효과적인 것을 찾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마흔아홉 해를 살면서 나는 아내와, 두 아이와, 그리고 한 마리의 강아지와 산다. 그리고 이 삶이 어떤 부귀영화로 치환될 수 없으며, 어떤 고도의 수행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에(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선택에 만족한다. 그렇게 난 꿈꾸던 삶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버렸다. 아니 이 삶을 지탱해 주는 필요조건 외에 모든 것을 버렸다. 내가 버린 것들은 사실 처음부터 쓸모없는 것이었거나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가끔씩 미련과 차가운 눈총이 느껴지지만 말이다.​




말썽만 피우던 녀석이 얼마 전 첫돌을 맞았다. 아내는 습식사료와 고기 간식으로 생일상을 차려주었으나 워낙에 식욕을 타고난 녀석인지라 만족을 모른다. 집안에 아기가 들어오면 생기가 돌 듯 우리 집은 뜬금없이 웃고 자지러지는 일이 많아졌다. 그만큼 손이 갈 일도 늘어가지만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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