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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ug 11. 2021

레이저와 검의 조합으로 바라본 스타워즈

아빠와 아들(2015. 12. 30)

평일 오후, 한가한 연말의 자유를 틈타 열 살 난 둘째, 사내아이와 함께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을 보았다. 평일 낮시간의 영화 관람은 늘 여유로운 분위기를 제공한다. 텅 빈 관람석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 덕에 남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 좌석번호를 무시하고 적당히 편한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다. 연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예외 없이 한적한 좌석 덕을 톡톡히 보았다. 여대 주변이라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노소를 불문하고 남자들의 전유물인 탓에 말이다. 곧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큰 딸아이는 해리포터 시리즈엔 열광하지만 스타워즈에는 큰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오늘도 친구와 홈스테이를 선택했다.  


상영시간에 조금 늦은 탓에 이미 어두워져 버린 영화관에 입장한 우리는 가운데 좋은 좌석을 예매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자리 잡은 사람에게 폐가 될 것 같아 적당히 잘 보이는 구석자리를 택했다. 우리가 예매한 좌석 바로 옆에 다 큰 청년이 혼자 관람하는 것을 보고 역시 스타워즈 시리즈는 여자 친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놀라웠던 일은 상영이 끝나고 퇴장하면서 목도되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중년 넥타이 부대를 만난 것이다. 분명 직장 동료들끼리 작당을 하고 온 듯했으며 연령대는 50대 초로의 남성부터 30대 초중반의 젊은 층을 아우르고 있었다. 모두 남성이었다. 영화를 함께 보러 오기로는 참으로 드문 조합이라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아니 남자들은 어찌하여 이토록 스타워즈에 열광하는 것일까? 레이저빔이 난무하고 온갖 첨단장비와 비행체가 등장하는 데다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은하계를 누비는 이 영화는 엉뚱하게도 중세 유럽의 기사단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중국 무협지와 일본 사무라이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선과 악의 대결, 음양의 조화, 우주를 관통하는 기철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배경을 가늠할 수 없는 이국적임을 떠나 이지구적인 영상을 선사한다. 1977년 처음 시작한 1편은 오늘날 40대 중반을 전후한 세대가 열광한 첫 번째 영화이지 않을까? 지금의 50대인 이소룡 세대와 확연하게 갈리는 영화적 편향성을 보여준다.


새로운 시리즈의 등장을 반기기라도 하듯 마트의 장난감 코너는 스타워즈 캐릭터로 도배된 지 오래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40대의 아빠와 초딩 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니 함께 열광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긴 탓이다. 장난감 코너에서 생떼를 쓰는 아이를 엄마는 외면할 수 있지만, 스타워즈일 경우엔 아빠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자신들의 어릴 적 로망, 아니 채워지지 않았던 욕망을 충족시키는 기가 막힌 장난감들이 판을 치는 21세기, 국민소득 3만 불을 향해가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밀레니엄 팔콘(한 솔로의 낡은 우주선) 프라모델을 구매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을 대리만족이라 말하지 말라. 사실은 아이의 장난감이 아니다. 며칠이 지나면 장난감을 놓고 아이와 싸우는 아빠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 아빠들을 탓하지 말자. 스타워즈 프라 모델은커녕 영화관을 찾기도 어려웠던 7,80년대를 보낸 아빠들이 과거로 퇴행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팍팍하고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남편이 아이 같은 짓일지언정 잠시라도 꿈꾸듯 감상에 빠져들었다면 할리우드의 스타워즈 재탕은 상술을 비난하기에 앞서 환영할 일인 것이다. 밤늦은 포장마차와 유흥가를 갈지자로 오가는 갈 곳 없는 중년의 행선지로는 이보다 더 건전할 수 있겠는가?


과거 시리즈 전편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둘째 아이는 내게 이해되지 않는 줄거리의 해석을 요구했다. 운전을 하면서 힘들게 선과 악의 대결, 깨어난 포스의 의미, 제다이 기사의 존재, 레아 공주와 한 솔로, 루크 스카이워커의 정체를 떠들다가 힘겨움을 느꼈다.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하고 있으려니 이건 3류 무협지 만도 못한 줄거리를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별 수 없이 집에 돌아와 시리즈 1편(이제는 4편이라 부르는)을 다시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스타워즈의 압권은 광선검이다. 지난해 겨울 미국 출장 중에 들른 LA 할리우드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푸른색 광선검은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모든 마트에 누워 있다. 정확한 표현을 빌면 레이저빔이 나오는 검이다. 레이저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분자 안에 있는 전자 또는 분자 자체의 들뜬상태 입자들을 모이게 한 후 동시에 낮은 상태로 전이시킴으로써 보강 간섭을 이용하여 빛을 증폭하는 장치"


이 첨단의 레이저빔을 발생시키는 장치로 "검"이라는 무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조지 루카스의 상상력과 할리우드의 상술이 결합한 결과일 것이다. 진정한 승부는 진검승부 아니던가. 람보와 코만도가 기관총을 난사하던 시절에도 이소룡의 파트너였던 백인 파이터 척 노리스의 델타포스 시리즈가 건재했던 것과 같이 육박전을 능가하는 재미는 없으니까.

    

아무튼 스타워즈의 에피소드 7은 새로운 3부작의 예고편이기에 흥미진진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실망스러웠다. 배우도, 이야기도, 특수효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감상하였다. 늙어버린 해리슨 포드의 등장 만으로도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조선의 40대 아저씨들이여, 도대체 왜 이러는가???  그대는 두 아이의 아빠라네.




이제 마스크를 쓰고도 출입할 엄두가 나지 않는 영화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2015 연말을 그리워하며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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