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필락시스와 입시

휴직일기, +103일(2021. 8. 13)

by 낙산우공

알레르기는 알아도 아나필락시스를 아는 이는 드물다. “항원-항체 면역 반응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급격한 전신 반응”이라는 설명을 들어도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겪어보지 않고는 말이다. 우리 집 둘째가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일으킨 건 코로나19 국내 감염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지난해 1월 말이었다. 가족력으로 알레르기를 달고 살았던 나도 알지 못했던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가히 쇼킹한 것이었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이다.


평소 게요리를 좋아했던 아들은 강원도 고성 여행길에서 대게찜을 먹었다. 전에도 가끔 먹었던 음식이기에 게 알레르기가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그날은 유독 게를 많이 먹었고 연말부터 이어진 미술학원 수업으로 피로해진 탓에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포장해온 게요리를 숙소에서 먹고 방에 들어간 아들이 중간에 나온 건 채 30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쪽 눈은 부어서 거의 감겨 있었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 있었으며 목과 귓속 뱃속 모두가 부글거린다고 하였다. 이미 한잔 걸쳤던 나의 눈에도 아이의 증상은 평소 가지고 다니는 항히스타민제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급하게 119 구급차를 불러 속초의료원으로 가는 중간에 아이는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아나필락시스가 가장 무서운 건 전신에 두드러기가 나면서 기도를 막는 것이다. 구급차에 함께 탄 구급대원은 잡히지도 않는 혈압을 계속 재려고 하면서 나에게 곧 병원에 도착할 거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눈앞에서 자식의 의식이 사그라져가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내 기분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 딸아이를 숙소에 남겨놓고 홀로 따라온 구급차 안에서 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그 공포와 두려움과 타들어가는 듯한 애간장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응급처치를 받고 한두 시간 경과를 지켜보다 숙소로 돌아왔지만 다음날도 아이는 맥을 추지 못했다. 놀란 마음에 큰 병원을 다니며 모든 검사를 다 해봤지만 정확한 원인물질은 찾지 못했고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아이는 두 번째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와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의심되는 물질은 학교 급식으로 나온 찜닭 소스에 들어갔다는 건새우였다. 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에는 유독 반응을 하는 것 같아 피해왔지만 담당 급식교사가 식재료 표시에서 이를 누락하는 바람에 학교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두 번의 응급실행에 놀란 아이는 응급처치 주사제를 갖고 다닌다. 학교 보건실에 하나 , 집에 하나씩 비치해 두기도 하였다. 가벼운 알레르기 증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알레르기약을 약한 거 센 거 각각 한 가지씩 들고 다니기까지 한다. 죽음의 문턱에 갔었다는 공포가 아이의 염려를 키웠고 당사자가 아닌 부모는 좀 유난스럽다 싶을 때도 타박할 수가 없다.


그런 아들이 입시미술학원을 다니면서 공기도 좋지 않은 곳에 하루 열세 시간씩 붙어있다. 방학 특강 4주간의 강행군 끝에 결국 사달이 났다. 누적된 피로는 아이의 면역력을 떨어뜨렸고 마지막 주는 하루 세 차례 4시간짜리 수업을 모두 채운 날이 드물다. 하루도 쉬지 않는 살인적인 일정(일요일만 한 클래스를 빼주는)에 과연 버텨낼 이가 몇이나 될까? 의외로 꽤나 많은 아이들이 버티고 또 적지 않은 아이들이 버티지 못한다. 도저히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입시 시스템은 결국 버텨내는 아이들로 인해 꾸역꾸역 굴러간다.


아이가 수업 중 정물로 나온 꽃이나 먼지에도 알레르기가 일어나고 약을 먹어도 견디기 힘들어할 때마다 난 군소리 없이 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아들이 대견하여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배려해주려 노력하지만 도무지 대한민국의 입시 시스템은 답이 없다. 이번 주 내내 알레르기로 한 타임씩 수업을 빼먹었던 아들은 오늘도 오후 타임부터 학원에 갔으나 저녁을 먹고 나서도 차도가 없어 결국 7시에 데리고 왔다.


평소 같으면 요령 필 궁리만 하던 아이가 받쳐주지 않는 체력을 원망할 정도로 입시에 열정적인 것이 기특할 만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입시 광풍을 비켜가고 싶었던 나로서는 예체능 분야에도 예외가 없다는 사실에 또 절망하게 된다. 5년째 무용을 전공하는 딸아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몸이 망가질법한 스케줄에 잔부상을 달고 살지만 레슨만 하고 나면 눈물바람이다. 그렇게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야만 원하는 대학에 가는 나라, 아니 그래야만 자신의 꿈에 조금이라도 다가 갈동말동 한 나라… 우리는 대한민국에 산다.




오늘의 감상,

척추 천장 인대 손상, 아킬레스건염도 모자라 무용 입시생들이 피해 갈 수 없다는 스트레스성 정강이 골절까지 오기 시작한 딸아이는 레슨 일정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 병원 가기가 쉽지 않다. 치료라고 해야 충격파 시술, 물리치료, 정 안되면 주사제를 놓는 것인데 이 모든 병의 완벽한 치료약은 휴식이라고 한다. 오늘 오후 겨우 시간이 난 딸아이의 병원에 들러 잠시 커피 한잔을 마시던 중에 아들의 긴급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끔찍한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금요일 퇴근 무렵 강남을 관통해 두 아이를 데리고 강북의 집에 오는 데에는 장장 90분이 걸렸다. 나는 술 한잔을 걸치지 않고는 잠에 들 수 없었다. 내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딸아이 레슨에 가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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