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100일(2021. 8. 10)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온 지 대략 7년 하고도 9개월이 지났다. 지금의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한 달이 조금 넘어 이사를 했으니 나의 재직기간과 거주기간은 나이가 같다고 할 것이다. 이직을 하기 전에 집 매매계약을 했고 그 핑계로 휴가를 내서 면접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공직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휴가를 낼 수 없는 기간이 있는데 딱 그 타이밍에 면접 일정이 잡힌 관계로 부득이하게 거짓말을 했다. 물론 계약 자체가 거짓말은 아니었고 굳이 반가를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을 둘러댄 것이라 마음이 그렇게 무겁진 않았다. 나는 같은 공무원 신분으로 이직을 하였지만 소속이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갔기 때문에(속칭 호적을 파간다고 하는) 임용이 확정되기까지는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기밀을 유지하였다.
아무튼 8년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한 직장에도 그리고 한 집에도 머물러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직장과 집 모두에 약간 싫증이 났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 기분이 호강에 겨운 투정인지 아니면 심각하게 변화를 고민해보아야 할 심리상태인지는 불분명하였다. 오십 줄에 접어든 중년 남성이 게다가 4인 가구를 책임지는 세대주가 이사나 이직을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내 연배인 가장들은 나와 같은 고민을 술이나 다른 도피수단을 통해 잊어버리려 노력할 뿐 그것과 마주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내가 채 1%도 되지 않는 희귀한 부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오기도 하였다.
따라서 나의 휴직은 매너리즘인지 한계점인지 알 수 없는 나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응시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였다.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을 챙기기 위한 목적은 명확하였지만 직장 일이 배제된 삶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여유를 제공한다. 이것은 지난 100일의 경험으로 분명하게 검증된 사실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여러 가지 일로 바쁘게 지내온 결과, 나는 어렴풋이 결론에 도달해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와 같이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인간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며 그 통찰은 꽤나 예리하다. 수도승들이 왜 깊고 깊은 산속에 틀어박혀 하안거니 동안거니 하면서 수행을 하는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온전하게 자아를 마주하는 고요한 시간이 인간에게 놀라운 통찰력을 주기 때문이리라.
지난 100일간의 휴직기간을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는 휴직의 정당성 내지는 현실성이다. 휴직의 필요성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부인할 수없다. 문제는 휴직을 하는 것이 적절했느냐? 휴직으로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은 아닐까? 혹은 휴직으로 인한 호구지책은 마련되었는가? 너무 가족에게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들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아이들에게는 더 없는 선택이 되겠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문제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완전무결하게 정당하였고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휴직으로 나는 답답하고 지친 일상의 챗바퀴에서 잠시나마 벗어났다. 그것은 잠시의 해방감에 멈추지 않고 무한히 확장되는 성찰과 휴식의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은 적지 않은 출혈을 각오하였던 터라 내가 예상했던 규모로 지출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적은 돈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금액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다소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겠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것에는 나와 가족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추가적인 대출조건이 까다로워져서 잠시 애를 먹긴 하였다. 생활안정자금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이 수입 없는 휴직자에게 이렇게까지 가혹할 줄은 몰랐다. 가계대출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탓에 정부가 대출규제를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생활자금이 긴급한 서민층에겐 은행의 문턱이 얼마나 높게 느껴질지 짐작이 갔다. 이러한 가혹한 대출규제로 인해 서민들은 제2, 제3금융권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것이 악성채무를 키워 가계대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은 불 보듯 뻔해 보였다.
두 번째는 집 문제였다. 지금의 집은 내가 결혼을 한 후 가장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집이다. 어렵게 분양받은 첫 집이 너무 좁아 자꾸만 커가는 아이들의 덩치와 늘어가는 살림을 감당하기 어려워 6년 만에 결행한 이사였다. 그만큼 온 가족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세간살이가 늘어가면서 이사 올 때의 감동은 사라진 지 오래... 게다가 지은 지 15년이 넘어가자 여기저기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누수가 되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서 온수가 끊기고, 인터폰이 먹통이 되어서 배달음식을 받기 위해 로비로 내려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낡은 창문 새시는 뻑뻑해져서 열고 닫기가 힘에 겨웠고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느려 터진 엘리베이터는 성미 급한 나를 괴롭히기에 충분하였다. 그렇게 집을 옮겨야 할 이유는 열 가지가 넘었지만 나의 갑작스러운 휴직은 그 모든 이유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휴직기간의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물론 예체능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지만)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사를 하는 것은 누구도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잠시 이사계획을 멈추었는데 나는 휴직기간 내내 집에 남아 이사를 가야 할 모든 이유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내게 돈벼락 맞을 횡재수가 없는 이상 이사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이 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 문제들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덜렁대던 싱크대 문짝을 직접 고쳤고, 발코니 창문 새시는 수리기사를 불러 해결하였고 툭하면 작동을 멈추던 인터폰을 교체했다. 물론 가장 저렴한 모델로... 그렇게 하나둘씩 불편했던 것들이 바로잡아지면서 이제 공간을 넓힐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묵히고 묵혔던 짐들을 정리하면 이 집은 네 식구 살기에 좁은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불편하고 싫었던 많은 부분이 사실 시간을 갖고 고민을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시간만 있으면 우리 삶은 큰 변화나 개혁이 없이도 한결 나아질 수 있다. 한동안의 폭염과 여름방학 아닌 입시생 방학을 맞은 아이들(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은 방학이 대목이다. -.-;;;) 덕분에 잠시 나의 집 고치기는 멈추었지만 대신에 틈틈이 집안 구석구석의 공간을 체크하면서 머릿속으로 구상을 마쳤다. 개학과 함께 하나씩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기만 한다면 입시지옥을 벗어난 아이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물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직장 문제... 내 휴직의 시작과 끝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이 문제의 답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집을 고치면서 의외로 쉽게 찾아졌다. 직장은 내 것이 아니므로 집처럼 내 맘대로 고칠 수가 없다. 물론 나의 집도 온전히 나의 소유는 아니다(아내에게 50%의 지분이 있으므로). 아무튼 잠시 직장을 떠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지난 7년 넘게 나를 괴롭힌 문제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지만(최소한 마음의 불길은 잡혔다), 다시 복직하는 순간 모든 상황은 원점으로 돌려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직장은, 특히 공직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 바뀌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복직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까?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내게 지금의 직장을 대체할만한 혹은 그 이상의 방안은 없다. 행여 그런 행운이 내게 돌아온다 해도 그것은 내 의지의 결과가 아니다. 즉 요행을 바라며 남은 기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내게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모든 책임을 외면한 채 떠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런데 깊은 고민 끝에 감행한 휴직의 결과가 원점이라면 너무나 허무하다. 난 제아무리 마음을 추슬렀다 하여도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면 또 분노하고 좌절할 것이 뻔하다. 이때 나는 어떻게 이 환경에서 슬기롭게 버텨낼 수 있을까? 내가 고칠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다. 나의 생각과 직장을 대하는 자세를 고쳐먹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마음을 다잡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옥죄겠지만 적어도 그 상황에 매몰되어 마음을 다치고 몸이 상하는 일만큼은 줄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10개월의 휴직기간 동안 몸과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마음의 내성을 만들어내려면 마음속에도 공간이 필요하다. 마음도 집처럼 고치고 정리하여 넓힌다면 남은 10년 남짓쯤이야 못 버티랴? 10년을 버티기 위해 난 10개월을 쉰다. 짧은 휴지기가 내 마음을 고치고 넓혀 줄거라 믿어본다. 이제껏 20년 넘게 버티었는데 그깟 10년쯤이야… 10년 뒤의 삶을 설계하고 준비하며 남은 시간들을 채운다면 적어도 휴직 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현명한 자아를 만날 수 있으리라 믿으며 휴직 100일의 소회를 마친다.
오늘의 감상,
오늘도 나는 여지없이 100킬로미터의 주행거리를 찍으며 나라시 택시기사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본다. 미터기도 결제기도 없는 나의 택시는 두 아이를 태우고 서울의 새벽과 낮과 밤을 달린다. 드넓은 광야를 질풍처럼 달리고 싶지만 전용차로도 없는 서울 시내는 뙤약볕에 바람 한 점 없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