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정말로 정확한 표현이다. 이보다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문제는 내가 「소년이 온다」를 읽은지 꽤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표지를 걷기 두렵다. 거기 적힌 일들은 허구, 상상, 혹은 정교한 현실의 재현과 모방. 전혀 다른 세계를 다룬 이야기를 읽어도 슬픔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되는데, 이미 있었으며 지금도 진행 중인 이야기의 슬픔은 얼마나 무거운가...
친구들과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영혼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쓸 거라고. 영혼에는 너무나도 많은 게 담겼다. 양심, 존엄, 가치관, 기타 등등...나를 구성하는 그 모든 것이 영혼에 담겼다. 그런데 영혼은 지나치게 가볍다. 물질화되지 않는 무형의 것들의 총체라서 그런 걸까.
하지만 영혼은 무겁다. 그 물질화되지 못해 가볍기 짝이 없지만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마모되고 부서지고 파편이 되어 흩어지면, 그런 영혼을 지닌 자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손을 들고 한 줄로 서서 내려오는 학생들을 소총으로 쏴죽이는 자들에게 영혼은 있는가? 이건 직접 자신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행위다! 총검에 뚫려서 반투명한 창자가 뱃가죽을 뚫고 나오는 자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타인의 영혼을 박살내는 사람보다 온전한 영혼을 지녔을 거다.
살아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마모되는 세상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죄악이 따라온다. 당장 내 책상에 널린 것들과 당장 사용해야만 하는 모든 것이 내 터전을 내 스스로 죽인다는 죄악의 파편이다.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내 영혼이 야금야금 잠식된다. 인간 삶은 1980년보다 덜 취약해졌는가? 상처는 치유되었는가? 상처를 외면하고 안온함에 몸을 맡기는 사이에도, 나는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았는데도 삶과 자연에 죄를 짓는다. 그런데 이마저도 인식하지 않고, 역사적 상처마저 외면하는 이들의 영혼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삶 자체가 나날이 무섭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디에서는 아이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고, 정의롭지 않은 이유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데 어떻게 잔치를 벌일 수 있으랴. 그 순간에도 내 영혼은 조각날 텐데. 죄를 덜 짓고 영혼을 조금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이는 그야말로 Human Acts.
정말로 정확한 번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