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에서 일요일까지 공연하는 만신:페이퍼 샤먼. 어제 보고 왔다. 자세한 설명은 읽지 않고 오직 소재만 보고 갔는데, 예상하지 못 했던 내용과 소재들이 쏟아져서 '오히려 좋아'를 속으로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른다.
창극 관람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련 지식이라곤 초등학교 6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정도가 전부다. 국립극장에서 창극을 여러 차례 올렸을 텐데 여태 관심이 조금도 없었던 것을 조금 반성한다...
좋았다. 참 재밌었다. 나의 감상으로는, 머리로 이해하는 극이 아니라(물론 그런 부분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가슴으로 받아 들이는 극이라고 해석했다. 이 극은 그 내용이 얼마나 정합성을 띠는지 여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영의 세계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옆 사람의 손을 잡을 때 필요한 건 마음이지 논리가 아니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공연을 볼 때면 시작할 때부터 눈물을 좔좔 흘리는 편이다. 이번에도 그랬는데, 아마 우러 전쟁, 팔레스타인 학살, 기후위기 같은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국제 문제들을 건드려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공인 실을 이끌 네 명의 '예민한 사람들'이 등장할 때가 되어서야 눈치를 챘다. 아. 이거 내가 생각한 것처럼 무속'만'을 중심으로 한 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주제를 건드리겠구나...
앞으로는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2막의 중반, 구덩이에 묻힌 남자 이야기가 나올 때 너무...너무 괴로웠다. 극이 문제가 아니다. 관람하는 내가 문제다. 배우의 처절한 연기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현실의 환경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며 극에 압도되어버렸다. 거기서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다...어쩌면 내가 퇴근하면서부터 감성이 촉촉해져서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이쯤에서 잠깐 내 감성을 적신 영상을 슬쩍...
...아무튼 다시 창극 얘기로 돌아와서.
내 안에 여전히 창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다. 아, 이거 진짜 재밌는 장르다.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더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극이 1년에 5일만 공연되고 내려가는 건 너무너무 아까운 일이다! 국립극장 유튜브 구독자수와 조회수를 보고 내 생각보다도 더 저조하여 심히 놀랐다. 영상 정말 잘 만들었는데. 진짜 기깔나는데. 지금 보니까 트위터 계정도 트위터 블루인데. 열심인데 왜...왜째서...
이유야 뻔하지 싶다. 우리가 우리 것을 잘 모르고 아낄 줄을 모른다. 한복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온갖 훈수는 다 두면서 정작 '한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풍조가 떠오른다. 민족주의까지 갈 것도 없다. 알아야 사랑하는데 알려고 하지를 않으니 사랑을 할 수 있나. 나라고 아주 잘 실천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고작해봐야 작은 실천 정도가 전부니까. 음. 국립극장을 또 가야겠다.
좋은 극이 사람에게 어떤 압도적인 감정적 경험을 주는지 언제 또 느꼈느냐면...집에 오는 지하철을 타고 내렸을 때 느꼈다. 하늘은 온통 새카맣고, 차도 사람도 없고 있는 거라곤 가로등과 내가 전부인 거리를 걸어가는데 좋은 공연을 보고 조용한 바깥에서 나 혼자만의 순간을 가지는 게 정말로 좋아서 참을 수 없이 벅차올랐다. 살면서 그런 경험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국립극장에 가는 길은 힘들었고(동대입구역에서 걸어갔다...왜 그랬을까?) 입장하기 전까지 피곤한데 그냥 집에서 쉴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전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정도였다. 내가 언제 또 이런 벅차오름을 맛볼 수 있을까?
3월부터 기다린 공연이었다. 기다린 만큼도 아니고, 그 이상으로 근사한 경험을 했다.
*브런치를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닌데, 글을 발행하려고 보니까 키워드에 '국립극장'도 '창극'도 없어서 조금 슬펐다...또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