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알게 된 것들
내가 처음 마라톤을 나간 건 한국나이 24살 때였어. 중학생 때부터 오래 달리기를 좋아했어서 나는 내가 잘 달리는 편인줄 알았지 뭐야. 그래서 당돌하게도 처음으로 달려보는 10km 마라톤에서 순위권에 드는 결말을 상상하며 뛰었어.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목표가 터무니없는 목표였다는 걸 깨닫게 돼. 10km를 달리는 것도 처음인 데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해서 힘들기로 유명한 대청호 코스였거든. 평소 3~4km를 달리던 페이스로 사람들을 앞지르며 달리다가 1km쯤 왔을 때부터 지쳐버렸어.
헛구역질을 하며 뛰다 걷다를 반복하면서, 머릿속에서 목표가 점점 하향이 되는데, 그게 은근 웃겼어.
순위권을 목표로 했다는 건 벌써 저만치 던져버렸고,
1시간 페이스 메이커가 지나가는 걸 보면서, 1시간 안에만 들어오기로 마음먹다가
페이스 메이커를 놓쳐버린 뒤로 유모차를 끌고 달리는 아저씨를 보면서, 저 사람은 꼭 잡아야지 하고 달리는데, 유모차 끌면서 왜 이리 빠른 거야?
돈 내고 고생하면서 어찌저찌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했는데, 달리면서 마음속으로 욕하던 건 그새 잊어버리고 나는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 후로도 계속 마라톤에 나가고 있어.
그중 내가 너희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마라톤의 매력은, 마라톤이 인생을 닮았다는 거야.
인생을 달리기로 비해야 한다면, “준비, 땅!”하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엎치락뒤치락하며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마라톤이 제격인 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마라톤은 수많은 사람이 줄지어서 출발선을 지나 달리기 시작하다 보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보다 순위가 높은 게 아니고 내 뒤에서 달린다고 해서 나보다 느린 사람도 아니지.
그렇기 때문에 취미 마라토너로서는 앞사람이나 뒷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내 숨과 내 컨디션에만 집중한 채 내 페이스로 달리는 게 마라톤을 잘 완주하는 비결이야.
인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
내 또래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내가 뒤쳐진 것 같아서 조급할 때가 있지 않아?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남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 거야.
마라톤에서 앞 선수를 쫓느라 페이스를 잃으면 기록도 잘 안 나올 뿐 아니라 완주하기도 힘들어질 수 있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타인을 쫓느라 내게 맞지 않는 목표를 세우고 달리다 보면 금방 지쳐서 다시 일어서는 데도 더 오래 걸리게 되는 것 같아.
마라톤을 여러 번 할수록,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마라톤은 ‘경주한다’는 생각으로는 잘 완주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돼.
특히 10km만 달리다가 20km를 달리게 되면, 마라톤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으로도 완주하기 힘들어져. 타인을 배재한 채,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달리는 것이 마라톤이지만, 싸운다는 생각으로는 2시간이 넘는 시간을 지치지 않고 달리기가 쉽지 않아.
그때부터는 나와 ‘함께’ 달린다는 생각을 가져야 완주할 수 있게 돼.
10km까지는 달리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하지만 20km를 달릴 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낙관적인 말들 뿐이더라.
“아직도 17km나 남았어”가 아니라, “우리 벌써 3km나 달렸어”라는 식으로.
나는 아직 인생을 말하기에는 우스운 나이지만, 인생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타인과도 나와도 경주하지 않고, 나와 함께 달려가는 것.
역경 속에서도 기쁨을 찾는 것.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인생을 잘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