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바닥

말보다 아래 있는 준비

by 밤하

좋은 관계의 조건

배려, 대화, 이해, 공감.


하지만 그 조건 아래에 있는

잘 보이지 않는 바닥 하나.


무너지지 않는 몸.


몸이 버텨줄 때

마음은 조금 느려지고,

말은 날이 서지 않아.


기운이 바닥난 날에는

사소한 말 하나가 가시처럼 꽂히고,

의도보다 말투가 먼저 닿아.


반대로 바닥이 남아 있을 때는

사람은 자연스레 느슨해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의 사정을 한 번쯤 떠올릴 여유가 생겨.


어떤 장면들은

관계의 문제처럼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돼.


아, 그건 몸의 바닥이었구나.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말이었고,

굳이 다치지 않아도 될 순간이었구나.


체력을 돌보는 일은

대단한 기술을 요구하지 않아.


잘 자는 것.

잘 먹는 것.

조금, 움직이는 것.

잠깐, 쉬어주는 것.


너무 익숙해서

자주 미뤄지는 것들.


하지만

그 사소한 돌봄 위에서

관계는 오래 버티게 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많은 경우 몸에서 먼저 무너져.


체력을 지킨다는 건

관계를 더 잘하려 애쓰는 일이 아닌,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한

가장 낮은 곳의 준비.


말보다 아래에 있는,

관계의 바닥을

조용히 다지는 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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