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저는 요새 2주째 주말에 요가를 가지 못하고 있어서 다능 님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는데, 그 사이에 다능 님은 아주 다양한 일들을 겪어내고 계셨군요.
나현 님도, 지선님도 아주 열심히 각자의 현생들을 살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으니 멋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야기들을 읽는 것이 신나기도 합니다.
오늘 다능님의 질문을 보니, 요새 제가 최근 겪은 일과 감정들이 바로 떠오르는데요. 그 내용은 제가 요가를 가지 못한 이유와 같아서 근황을 나눌 겸 자세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지난주 목요일이었어요.
제가 병원에 가지 못했던 날, 친오빠가 아버지께서 입원해 계시는 병원에 오전 주치의 회진 면담을 다녀왔었는데요. 오전에 그 내용이 궁금해서 오빠에게 병원에서 별말 없었는지 물어봤는데, “별말 없었다.”라고 대답을 했어요.
저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 오전 회진 때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서 오빠에게 다시 “오전 주치의 회진 때 의사 선생님이 별말 없었어?”라고 물어보니, 그제야 “별 말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라고 되물었더니, “음.. 전해질 수치가...(블라블라).. 이번 주 주말을 넘기시기 힘드실 것 같대.”라고 하는 거예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면서, 심장이 엄청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싶어서 다시 되물었는데, 검사 결과 아버지의 현재 신체 상태나 여러 가지 수치들이 지속될 경우 이번 주 주말이나 다음 주를 넘기시지 못할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침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업무에 지장이 갈까 봐 저녁에 이야기하는 거라고요. 어머니께도 아직은 말씀을 못 드렸다고요.
그때 ‘한시라도 빨리 내가 병원에 들어가야겠다.’, ‘아버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순간들을 내가 옆에서 지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당 병실은 보호자 면회는 일부 정해져 있는 시간에만 가능하고, 보호자 상주가 안 되는 병실이었는데요. 임종단계의 환자들에게는 예외적으로 보호자 상주를 허락해 준다고 해서 의료진 허가를 받아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옆에 있어 드려야겠다.’고 호기롭게 결정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무척이나 무섭고 두렵기도 했어요. ‘내가 옆에 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을 하니까, ‘죽음’이라는 것, ‘살아있던 존재가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을 바로 옆에서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슬픈 일이던지요.
그래도 아버지 자신은 얼마나 외롭고 무섭고 두려울까를 생각하면, 건강하게 살아있는 저의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 제가 한 공간에서 아버지와 함께 해드기로 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에 이렇게 아버지 옆을 지킬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금요일 저녁부터 병원에서 상주하며 지냈습니다.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제 눈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사실 병실에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어요. 그저 옆에 조용히 가만히 앉아있어 드리는 것밖에 없는데도, 아버지께서는 엄청난 흐뭇함이 묻어 있는 표정으로 잠도 안 주무시고, 눈을 말똥말똥 뜨시고는 저를 계속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니, ‘긴 시간 동안 병원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싶고, ‘잠깐 주어지는 가족 면회 시간이 얼마나 아쉽고 가족들을 돌려보내기 힘드셨을까.’ 싶으면서, 마음이 엄청 안타깝고 짠했습니다.
평소에 피로감 때문에 잠을 많이 주무시던 아버지는 유독 잠도 안 주무시고, 제 얼굴에서 눈을 떼지도 않으시고 계속 눈을 마주치면서 저를 쳐다보셨어요. 간호·간병을 도와주시는 선생님들도 아버지를 보시더니 “어르신~ 오늘은 웬일로 잠도 안 주무시고 그렇게 말똥말똥 깨어계셔요~ 딸이 오니 좋으세요?”라며 말을 건네셨고, 그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께서는 수줍게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저에게는 그동안 할머니와 아버지께 차마 묻지 못했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이전 글에서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희 친할머니는 저를 보면 ‘침침하던 눈이 밝아진다’는 뜻으로 ‘눈 밝게’가 변형된 사투리로 추정되는 ‘눈볼개’라는 애칭을 불러주셨고,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가 그 애칭을 이어받아서 저를 똑같이 불러주셨는데요.
어린 마음에 그 애칭이 ‘진짜일까? 설마 진짜 나를 보면 침침하시던 눈이 밝아지실까?’, ‘말만 그렇게 하시는 거겠지’하고는, 그 진실 여부가 항상 궁금하고는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진짜 사실이라면 이번에 아버지께 어떤 효력(?)이라도 발휘해 주었으면... 하는 기적을 바라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궁금증이 이번에 싹 풀리게 되었습니다. 저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고, 하루 종일 저를 즐겁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시면서 눈을 감지도 않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하셨던 그 ‘침침하던 눈이 밝아진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었던 거라는 걸 직접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 옆에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좋아해 주시던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로 처음 가졌던 두려움이나 슬픔은 어디론가 싹 사라져 버리고, 그저 아버지 옆에 같이 있어 드리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아버지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하고, 아버지가 예쁘고 멋있어 보이시던지요.
살과 근육이 엄청 빠지셔서 힘 없이 영양제수액을 맞으면서 계속 침대에 누워계실 수밖에 없는데, 그 침대 안에서 꿈틀대시는 작은 움직임 하나, 찬찬히 지으시는 작은 표정 하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안 예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소중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그때의 위기를 넘기시고, 지금은 전해질 수치가 정상화되고 안정되셔서 그때보다는 그래도 편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계십니다. 물론 아버지의 안정화와 병원의 정책상의 상황으로 제가 병실에서 더는 길게 상주할 수가 없어서 퇴실해서 업무도 하면서 저의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제가 병원에 더 함께 있어 드리지 못하는 게 엄청 아쉽고 안타까운데,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상태가 좋아지셨다는 것이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또다시 아버지 상태가 안 좋아지실까 봐 걱정되기도 하면서 아주 여러 가지 감정들이 듭니다.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해드릴 수 있었던 병실에서의 며칠 간의 시간들은 저에게 평생토록 절대 잊지 못할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현재 아버지께서 병원에 계시지만, 그렇게라도 계셔주시는 것이, 말 그대로 “존재만으로” 얼마나 감사하고 큰 힘이 되는지요.
어릴 때는 그렇게도 부모님으로부터 간섭받고 잔소리받는 것도 싫고, 독립해서 살고 싶고, 두려울 것 없이 철없고도 당돌하게 살았었는데, 이제는 뒤늦게 부모님께 소위 ‘분리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 ‘존재의 가치’와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 ‘참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당연하게 느껴졌던 ‘음식을 삼키는 것’, ‘대화를 하면서 수다를 떠는 것’, ‘재채기나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어내는 것’등등 이런 아주 기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상은 정말 엄청난 능력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음식을 삼키는 것은 식도의 근육이 발달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고(식도 근육에 힘이 없어지면 음식을 삼킬 수 없어서 기도로 음식물이 잘못 넘어가면 폐로 들어가 폐렴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해요),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혀의 근육에 힘이 있어서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것이었고요. 재채기나 기침을 하고 가래를 스스로 뱉을 수 있는 것은 갈비뼈와 목 주변, 입의 근육들이 힘을 받쳐주어야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기본적인 것들은 다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몸의 적재적소에 튼튼한 근육이 제대로 있어야만 가능한 것들이라는 것, 그래서 지금 내가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능력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고도의 신체능력이 필요한 요가를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어요. 그러니 좀 안 되는 아사나가 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좀 힘든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실상은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감사한 일들을 새삼스럽게 더 많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현 님은 요새 어떤 감사한 일들이 있나요? 그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사진 : 황현아 作, 선물]
**병실에서 나와 이 편지를 보내고 난 3일 뒤에 아버지께서 소천하셨습니다.
많은 시간 동안 함께 기도해주시고 위로해 주신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