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
40일간의 공사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7월 28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름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땀을 흘렸던 것은 단순히 노동을 해서 땀이 나는 줄 알았고 얼굴에 치밀어 오르던 열기는 계속해서 미뤄지는 공사 일정 때문인 줄 알았으며, 목이 자주 마르는 이유도 단순히 마음이 너무 급해서 그러겠거니 하고 지나쳤지요.
몸은 이미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마음은 이제야 따라잡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매일 뜨거워지는 머리를 식히며, 가장 뜨거운 계절 한가운데서 차가운 이성을 붙들고 매 순간 혼자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이 여름이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기 공사를 3일 안에 끝내겠다는 업자분이 작업 도구들을 하나씩 꼭 빼놓고 와서 일정이 하루하루씩 늘어나다가 그 일정 안에서도 집안에 두 번의 초상이 났다고 2주를 또 미루고,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이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라고 응급 수술에 들어가니 다른 사람 구해서 마무리를 하라는 엔딩을 겪을 때에도 인류애가 조금은 사라질 뻔했지만 눈물을 흘리거나 실의에 빠지진 않았습니다.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다음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들만을 생각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인생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분들이 더욱더 많았기에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잘 간직한 채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일주일간 진행했던 가오픈 체험 수업을 모두 마무리하고 옥상에 올라가 해가 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니 그제야 어떤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라고요. 맨발로 서 있는 발바닥엔 하루 종일 달구어진 옥상 바닥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 뜨거움에 덩달아 눈시울까지 뜨끈뜨끈해졌습니다.
나현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피, 땀, 눈물로 지어진 요가원이라면 그중 ‘땀’과 ‘눈물’이라는 두 가지 조건만큼은 확실하게 채운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제 그 지글지글 끓는 옥상 위에서 무더위의 중턱을 지나, 절정에 다녀온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옥상 계단을 내려와 차분히 정리된 요가원으로 내려왔을 때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하는 문턱에서 선선한 바람을 살짝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늦게 알아차리고, 너무 빨리 끝나버린 25년의 여름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무협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말 많은 무협지를 읽으면서 꿈을 키워(?) 왔는데요, 무협지에는 항상 면벽수련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그게 무슨 느낌일지 호기심이 일곤 했습니다.
달마 대사가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벽을 보고 좌선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정신 수양법인데, 몇 주간 제가 벽만 보고 퍼티칠, 페인트칠만을 하다 보니 혹시... 이게 면벽수련이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심지어 봉도 들고(페인트 롤러 장대), 칼도 들고 (퍼티용 금속 헤라), 붓도 드니(페인트 브러시), 무협지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온 주인공 같아서 괜스레 멋져 보이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혼자 유치한 생각들에 취해있는 저를 요가 수련하는 모습과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들에 비유하여 멋지게 표현해 주시니 나현 님께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이 폐관수련을 끝내고 나온 저는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지켜줄 만큼 조금 더 강한 사람이 된 것 같답니다!
이 여름, 편지를 나누는 우리들에게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네요. 다능님도 자기 주도적으로 멋진 길을 씩씩하게 개척하고 계시고, 현아 님은 아직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걸으시면서 그 길 위에서 변함없이 단단하고 곧은 뒷모습을 보여주고 계시지요.
나현 님은 실제로 먼 길을 달려 사람을 만나고,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놓지 않으시죠, 그 추진력을 볼 때면 나현 님과 저의 넘어설 수 없는 체급차를 느끼곤 한답니다...
저는 요가원을 오픈하기 바로 직전 주까지도 다른 요가원에서 수업을 계속하고 있었는데요, 그곳 원장님께서 작별 인사말로 응원의 말씀을 해주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요가를 오래 함께하려면 결국 나만의 요가원을 열어야 동력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고 말이죠. 그 말이 참 제 심정을 대변해 주는 말처럼 느껴졌답니다.
어느 날 잠자기 전에 누워서, 로또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까?(심지어 저는 로또를 사지도 않습니다..)라고 시작된 공상이 100억이 뚝 떨어진다면?이라는 질문으로 확장되더니 결국 밤을 새워가며 있지도 않은 백억으로 소비 계획을 세우게 되었죠. 그 공상의 끝은 늘 같았습니다.
‘정말 멋진 요가원을 만들고, 거기서 좋은 사람들이랑 요가나 실컷 하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요가원을 여는 일은 100억이 없는 지금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하지만 곧 또 다른 마음이 애써 새운 공상의 탑을 와르르 허물어 버렸습니다.
‘아니야… 나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
그런 저의 이야기에 나현 님은 오히려 요가원을 여는 것이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라 머리가 띵하기도 했고, 그 순간 완전히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큰 동력을 가지고 더 멀리까지 나아가며, 그 안에서 저만의 자유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세분이 지금 걷고 계신 길들이 저에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도 함께요.
저는 이렇게 끝없는 공상들에 빠질 때가 많은데요, 쓸모없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때도 있답니다. 다능 선생님도 공상을 자주 하시나요? 하시지 않는다면 제가 하나의 소재를 던져 드릴게요.
지금 당장 백억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이지선 作, 그 날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