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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un 15. 2024

특별하고 무난한 하루

[아직 어른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여름이 온다고 하면 '더위'를 떠올리곤 한다. 해가 지날수록 지독한 열기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끝내 여유와 생기까지 잃게 한다. 하지만 나에게 여름은 마음이 일렁이는 계절이다. 유독 감정이 정신이 못 차리는 계절이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계절. 유독 어려서부터 더위에 약했다. 열대야가 심하면 줄곧 잠을 못 이루곤 했다. 생각에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다 결국 새벽의 여명이 존재를 드러날 때쯤에야 잠에 들곤 했다.


최근 프로그램 하나를 종영하고 자연스레 다시 백수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역시나 일을 끝냄과 동시에 가지게 되는 생각은 '드디어 끝냈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일거리를 다시 알아봐야 한다는 조급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안도감과 조급함의 공존이라니, 참으로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까지 조금함에 불안감이 더 높아감에 따라 자연스레 스트레스도 함께 높아져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경기가 어려워 프로그램 제작이 줄어들고, 작가 구인공고가 줄었다. 그만큼 적은 공고에 많은 작가가 몰렸다. 그리고 합격률은 더 낮아졌다. 하지만 이상하게 얼굴에 미소가 슬그머니 떠올랐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일이 구해지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져야 정상이었다. 더욱 이상한 건 일이 조금 더 안 구해지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일을 해야 생활비가 있고, 그래야 생활할 수 있는데 왜 마음이 이런 걸까, 이성이 고장 난 걸까 걱정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걱정이 든 것도 잠시뿐이었다.


구인을 안 하는 데 별 수 있나, '나'를 일부로 안 뽑는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머릿속에는 '지금을 즐겨보고 싶다'는 큰 욕구로 가득 채워졌다. 아직까지는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부분에 있어 득보다는 실이 많은 상황이다. 그래도 여전히 '방송작가'가 하고 싶은 내가 나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다. 그냥 특별한 이유가 없이 하고 싶어서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든다.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이 있듯이 그냥 이 직업이 좋아서 못 그만두는 내가 가끔 미울 때가 있다.




처음 방송작가로 일을 하며 어느 날 갑자기 몸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자칭타칭 이팔청춘인 나는 이런 몸의 경고를 무시했고 그렇게 큰코다쳤다. 시작은 두통이었고, 어지럼증도 왔지만 정상적이고 규칙적이지 않는 생활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단순히 넘겨버렸다. 점점 몸에 힘이 빠졌고, 집중력도 떨어졌고, 가끔 손도 떨렸다. 하지만 잠도 하루에 많이 자야 3~4시간이었고, 가끔은 이틀 동안 잠을 못 잘 때도 있었고 너무 바빠서 종일 못 자고 아무것도 못 먹을 때도 있었다. 너무 바빴고 일할 사람은 적고 할 게 별로 없고 이제 일을 막 시작한 막내는 손이 절대 빠를 수 없었다. 선배들은 새벽까지도 계속 전화와 카톡으로, 출근하는 내내 까지 연락을 계속했고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볼일을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일을 못해서 그런가, 내가 지금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밉보여 집장 내 괴롭힘 그런 거... 결국 나에게 벌어진 건가? 싶었지만, 차라리 그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 방송업계는 본인의 시간이 없는 직종이었고, 막내만 그렇게 일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연차가 높을수록 막내보다는 일이 적거나 요령이 있어서 일의 처리 속도가 막내보다는 빠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메인 작가 위치가 아닌 이상은 모든 선배가 그러했기에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게 당연히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자고 일어난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려 눈을 떴는데, 분명 눈을 떴는데 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나는 알람을 잘못 맞춰서 새벽에 눈을 떴는지 알았다. 그렇게 눈을 감았고, 잠이 겨우 들었을 때쯤 알람이 다시 울렸다. 체감상 10분 정도 지났을 쯤이었던 것 같다. 그쯤 되자, 알람에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다시 떴다. 분명 아까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이 캄캄했던 것 같은데, 다시 눈을 뜨니 세상이 환했지만, 뿌옇고 이상한 막이 양쪽 눈을 막고 있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고 있던 터라 안경을 쓰지 않아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손을 더듬거려 겨우 안경을 썼지만,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 덜컥 눈물부터 나왔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성과 사고가 마비되었다. 그 와중에 일은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부터 들었다. 그래서 울먹이며 '빅스비'를 찾았다. 다행히 응답했다. 같이 일하는 작가 언니에게 전화를 걸라고 말하고 겨우 전화연결이 되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내가 했던 첫마디는 "죄송합니다."였다.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현실인데. 그래도 작가언니는 걱정을 해주었다. 더 높은 직급의 언니들께 사정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전하며,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타지에서 부모님과 가족이 처음으로 보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내가 그 순간 가장 의지할 수 있었던 건 손에 쥐어진 나의 삼성폰과 나의 눈이 되어줄 빅스비뿐이었다. 평소에는 왜 이렇게 멍청하냐며 놀렸었는데, 괜스레 미안하고 고마웠다. 택시를 겨우 타서 근처 안과에 갔다. 안과에 카운터에 가서 울며 사정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자고 일어났는데 눈이 안 보여요. 제발 도와주세요" 처음으로 그렇게까지 처절하게 울어봤던 것 같다. 눈이 안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봤으니. 놀란 접수처 직원은 나를 진정시키며 접수 진행을 하며 나를 자리에 앉혔다.


내 이름이 불리고, 간호사는 나를 부축해 각종 검사를 도왔다. 검사가 끝나고 나는 드디어 의사를 볼 수 있었다. 의사는 내게 그동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했냐고 했다. 나도 몰랐다. 얼굴, 그러니까 머리 가득 염증이 찼다고 했다. 그래서 시신경이 있는 부분이 염증에 눌려 앞이 안 보이는 거라고. 염증 수치가 줄고 염증이 제거되면 눈이 보일 거라고. 바로 주사와 치료를 병행하고 약을 먹으면 당장 몇 시간 후부터 눈이 보일 거라고. 다행히 시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에 나는 안도의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데 되려 다른 문제가 있었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아 몰랐는데, 내 왼쪽 안면이 경련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는 신경에도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염증 때문일 수도 있으니 우선 약부터 먹어보고 증상이 지속되면 신경외과를 가보라고 했고 나는 이조차도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눈이 보인다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의식이 오락가락한 와중에, 팔에는 바늘이 여러 개가 계속 꽂혔고, 의사 선생님들은 나의 베드를 이동시키며 여러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실로 이동 중 병원의 무늬가 있는 하얀 천장을 보며 주마등 같이 순간 동안 많은 기억들이 훅 지나가며 의식이 끊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한 펠로우 선생님이 내게 "환자 분 의식이 드세요?  환자분 검사는 다 끝났고요. 지금부터 검사 결과 설명드릴 거예요. 환자분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머리 관련해서 검사를 좀 했어요. 근데 추가적으로 검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종양이 있는 것 같은데 위치가 안 좋은 것 같아요. 수술을 하게 되면 뇌 수술이 진행될 것 같고요,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눈과 귀가 안 들리게 될 가능성도 높아서요. 환자분 나이가 너무 어려서 너무 안타까운 상황입니다."라며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 그럼 저 죽나요?"라고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무조건 죽는다는 게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조금 높다는 말씀을 드린 거예요. 다만,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시력과 청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책임지고 이 분야 최고 교수님 모셔오겠습니다. 울지 마세요"라고 하더니 휙 사라졌다.


의사가 사라진 뒤 멍한 채로 누워 있었다. '내가 죽어? 진짜 나 이대로 죽나? 이런 게 어딨어? 한 거라곤 친구들 다 놀 때 나는 죽어라 일만 했는데. 학교 다닐 때는 휴학 한 번 못해보고 죽어라 학교 다니며 치매 걸린 할머니 모셨는데.... 나는 봉사도 그렇게 열심히 다녔는데, 그 흔한 반항도 땡땡이도 안 했는데 이렇게 죽는다고? 그럼 나 억울해서 못 죽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중년 남성으로 보이는 의사가 아까 그 의사 선생에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가 나 당직도 아닌데, 왜 날 부르고 난리야? 뭔데? 엄청 중요한 일이라며! 빨리 안내해!" 그리고 그들은 내게로 왔다. 펠로우 의사 선생님은 뒤에서 내게 윙크하며 웃었다. 교수님은 내게 입원해서 증상과 관련한 추가 검사 후 치료에 대해 다시 의논해야 하고 사라졌다. 펠로우 선생님은 교수님이 사라지자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환자분 병명과 관련해서는 이 병원 최고 분야 선생님이세요! 환자분 젊으시니까 포기하지 마시고, 앞으로 행복하게 사셔야죠!"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그 펠로우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나는 결과적으로 치료에 성공했고, 응급실에서 이후로 그 펠로우 선생님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나는 놀라서 내가 절망에 빠져있었는지 조차 몰랐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해 그 해 여름, 나는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 처음으로 보내는 첫여름인, 지금. 나는 이 여름이, 이 더위가 마냥 그냥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그냥 타오를 듯한 저 태양이, 선선한 바람이 잠시 쉬어가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아서.




아프고 난 이후 내 성격은 정말 달라졌다.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던 나는, 이제 '나'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보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계속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최근 쉬면서 일하면서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연락한다. 내가 아팠던 걸 몰랐던 친구와 아는 친구들의 반응이 다르다. 내가 아팠던 걸 아는 친구들은 내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스스로보다 타인을 좀 더 신경 쓰던 네가 이제는 너 자신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그리고 뭔가 더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아팠던 걸 몰랐던 정말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은 내게 "넌 여전하구나.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내는 친구구나. 네가 해낼 줄 알았어. 나는 그런 네가 부러워. 그리고 네가 자랑스러워. 너는 정말 괜찮은 어른이 돼 가고 있구나"라고 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종종 봐왔던 친구들의 다른 반응에 나는 놀랐다. 내가 아팠기 때문에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팠던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구나. 어떠한 사건과 특별한 이유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어줄지언정 그것이 바로 어른스럽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특별하고 무난한 하루 속에서 삶을 살아가며 넘어지고, 달리고, 잠시 쉬어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점점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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