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을 향해 쭉 달리다 보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곳에 때론 다다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가로막힌 무언가에 의해 때론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곤 했다. 저 멀리 펼쳐진 지평선 그 너머에는, 이 막힌 벽 너머에는 분명 무언가 값지고 반짝이는 게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곤 한다. 수없이 부딪쳐도 보고, 부셔보려고 해도 조그만 틈새를 끝내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끝내 절망을 느낀다. 때론 노력이 다가 아니기도 하니까.
괜히 씁쓸함을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부스러기 같은 작은 조각만 남아있다. 그 조각은 만지지도 못하고 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참으로 쉬운 게 하나 없다는 걸 되새기면서 흘려보낸다.
최근에 지인들에게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줄곧 끊이지 않게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내가 얼굴이 폈을까? 반짝인다고 내게 해주는 걸까. 한동안은 답을 찾지 못해 답답해서 괜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억울할 일이 아니었는데. 칭찬은 거만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잘 챙기는 방법도 배워야 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를 대우하고 사랑해 주는 것.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 준다는 것. 그것만큼 든든하고 최고의 칭찬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나르시시즘에 빠지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나의 노력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줄 수 있는 사람 역시 '나'라는 본인밖에 없다. 늘 평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되, 모든 걸 그대로 따를 필요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 싫어하는 사람도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쉽지 않고, 그 과정은 무척 슬플 수도 있고 때론 무너질 수도 있다. 좋음에는 이유를 찾되, 미움의 이유를 끝까지 쫓지 말아야 한다. 나 싫다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신경 끄고, 이유를 찾아다니지 마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도 신경이 많이 쓰이고, 에너지 소비가 좋아하는 것보다 때론 더 소비될 때가 있다. 단순한 싫음을 뛰어넘어 증오로 이어지는 것이 스스로를 망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나에게 오는 미움에 대하여 일일이 이유를 찾고, 오해를 풀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오해 역시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기에, 흘러가고 지나가야 하는 정류소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신경 쓰고 살아가기에도 시간은 충분히 부족하고 그 사랑을 온전히 다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를 별로라고 생각한 사람은 어떠한 이유를 계속 만들어서라도 끝까지 나를 싫어할 확률이 크다. 그리고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은 어떠한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을 안다. 언제든 어느 위치에 있어도 나를 응원해 줄 거라는 그 믿음이 세상을 환하고 희망차게 만들어준다. 그러니 버리지 못할 관계는 없다. 안 될 것 같고 나를 망치는 관계를 오래 붙잡고 끙끙 앓을 필요가 없다. 지금 내 옆의 소중한 관계를, 그리고 가장 빛나고 가치 있을 나를 힘껏 붙잡고 한없이 사랑해 주면 된다.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나를 빛나게 해주는 내 곁의 사람들과 함께 나의 시간에서, 우리의 시간에서 세상의 한 공간을 차지하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