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밖에 있는 마음

1부 : 멈춤의 순간들

by 별하

마음이 멈추는 순간, 글이 시작된다

- 멈춘 것이 아니라, 멈춰야만 하는 때도 있다.


끝이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끝은, 자꾸만 이야기를 다시 부른다.

무언가를 끝냈다고 느낄 때, 마음은 어딘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 멈춘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 나는 비로소 다음 문장을 만난다.





어느 계절의 끝에서, 나는 문장을 덜컥 닫았다. 더 쓸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고,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거실로 번지는 햇살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무심했고, 차를 끓이는 손끝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방금까지의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수천 자의 단어를 다듬고 있었는데, 문장 하나를 덮고 나니 모든 것이 갑자기 달라졌다. 이 낯선 평온 앞에서 나는 한동안 조용히 서 있었다. 이게 끝일가, 잠시일까.


책상 위엔 아직 지워지지 않은 메모가, 머릿속엔 아직 단어를 굴리던 리듬이 남아 있는데, 글은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글을 마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 조용한 아침은, 온전히 나로 있는 첫 시간이다.




나는 이상할 만큼 이 시간을 좋아했다. 완성한 글보다 그 끝에 찾아오는 조용함을 더 사랑했다. 지금 나는 글을 쓰지 않는다. 다만 마음을 따라 걷는다. 이따금 손을 멈춘다는 건, 의외로 삶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무엇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백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회복했다. 무언가를 끝낸다는 건 대개 기쁜 일이다. 그런데 글을 끝냈을 때 나는 자주 공허해졌다. 내가 건넨 마지막 문장이 누군가에게 도착했을지, 아직 먼 허공에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잠시'를 사랑하게 됐다.

마침표와 첫 문장 사이, 아무 말도 쓰지 않는 이 시기를.




문장을 쓰는 동안에는, 늘 무언가를 향해 있었다. 그게 누군가의 눈빛이든, 오래된 기억이든, 혹은 단지 단어 하나의 온기든. 나는 그것을 정확히 닮아가려 애썼다. 문장을 빚는 일은 어쩌면 마음을 감추는 동시에 들키는 일이었다. 너무 많이 말하지 않으려 했고, 동시에 너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외면받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한 편의 글을 끝내고 나면, 내가 쓴 문장보다 내가 남겨놓은 침묵이 먼저 떠올랐다. 어떤 말을 쓰지 않았는지, 어떤 마음을 덜어내지 못했는지. 어떤 시선을 끝내 외면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그런 시간은 내게 부끄러움과 안도를 함께 데려왔다. 아직 쓰지 못한 것이 있다는 건 곧,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글을 다 쓰고 난 뒤의 시간은, 마치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보호자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꺼낸 문장들이 어디쯤 아플까, 어디서 피가 날까, 어떤 문장이 과했을까. 그런 걱정과 함께 원고를 바라본다. 그러나 동시에, 이젠 비로소 내 삶이 조금 정리된 듯한 안도감도 든다. 온 마음을 바쳐 무언가를 마주하고 나면, 더는 붙잡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그렇게 나는 몇 날 며칠을 멍하니 보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노트북은 켜지 않았고, 책장을 넘겼지만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글을 떠난 상태였다. 한 편을 끝냈다는 사실만이 내 하루를 지탱하고 있었고, 그것은 잠시 동안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물었다.

"글 하나 쓰는 데 얼마나 걸려요?"

나는 항상 대답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원고 파일을 연 순간부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훨씬 이전, 내가 혼자서 길을 걷던 날,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던 순간, 갑작스레 울컥했던 오후, 그런 모든 시간이 다 글을 쓰기 위한 준비였기에.




때론 '글쓰기'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곤 했다. 나에게 글쓰기란 살아낸 감정을 정리하는 일이고, 말로 옮기지 못한 마음을 붙들어 두는 일이며, 떠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구원처럼 느껴지고, 또 어떤 날은 고통처럼 느껴지는 그것. 그러나 늘 끝까지 함께 살아내야만 하는 그것.


특히 원고를 마치고 난 후의 시기는, 이 '글쓰기'가 얼마나 나를 더 먼 곳까지 많이 데려다주었는지를 자각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문장을 지을 땐 오직 그 감정에만 집중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된 것이었는 지를 깨닫게 된다.


지금 이 고요한 시간도 언젠가는 하나의 글이 될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지만, 내 안에서는 또 다른 문장이 자라고 있다는 걸. 그 문장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의 언저리에서, 말이 되기 직전의 침묵 속에서, 내가 다시 써 내려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글을 멈춘다고 해서 마음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언제나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 문장 밖에 있는 마음들, 그 마음들을 나는 다음 글을 위한 작은 불씨로 간직한다.




쓰지 않는 시간에도 마음은 계속 쌓인다.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순간, 늦은 밤 문득 울컥했던 이유를 혼자 끌어안고 잠들던 밤, 비가 내리던 날 정류장에 멈춰있던 기억, 사소한 감정들이 서랍 속 손편지처럼 차곡차곡 모인다.


그런 날들은 얼핏 무의미해 보이지만, 내 글의 시작은 언제나 그런 조용한 순간에서 태어났다. 어떤 거창한 깨달음보다도, 차 한 잔 앞에 두고 흐릿하게 머물던 생각에서 시작된 문장들이 오히려 더 오래 살아남곤 했다.


잠시 멈춘 지금, 나는 그 모든 조각을 바라본다. 쓰지 않고, 말하지 않고, 그저 마음의 표면에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 이건 어쩌면, 나의 문장들이 다시 자라날 밑거름이 된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기다리는 일이라는 걸, 나는 이 쉼표의 시간을 통해 배운다.


누군가는 "그냥 좀 쉬지 그래요?"라고 말했지만, 이 쉼조차도 글을 위한 과정이라는 걸 나는 안다. 겉으론 쉬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속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는 걸.




쉼표는 늘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맥이 빠질 때도 있었고, 기대하던 글이 어딘가 모르게 비껴가 좌절감을 안겼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물러섰다.

"지금은 글이 아니야."

"아직 마음이 말을 고르지 못하고 있어."

이런 핑계를 되뇌며, 글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은 핑계가 아니라 나의 방식이었다. 글이 나에게 다가오려면, 먼저 내가 내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문장을 '쓰기'보다 '찾기'에 가깝게 여겼다. 말이 다가올 준비를 마칠 때까지, 나는 그저 기다리고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멈춰 있는 동안에도 나는 멈춰 있지 않았다. 생각은 천천히 가라앉았고, 감정은 안쪽으로 더 깊이 스며들었다. 마치 흐리던 물이 고요히 가라앉아 투명해지듯, 문장이 다시 내 안에서 서보이기 시작한 건 그 모든 시간을 견디고 난 뒤였다.




이따금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문장 밖에 있는 감정들이, 끝내 말이 되지 못한 채 남아 있지는 않을까. 전하지 못한 진심, 삼켜버린 문장,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마음의 초안들. 그런 마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적어도 그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 안의 오래된 결심을 다잡곤 한다.


아직 문장이 되지 못한 말, 그 문장 밖에 있는 마음들은 어쩌면 누군가를 향한 조용한 신호인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어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조용히 남아 있는 것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조용한 마음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언젠가, 그 마음이 문장으로 다가올 날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문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의 여백을 지키며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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