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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n Mar 01. 2019

첫날-2' 오감으로 제주도를 담아가던 하루

나의 즉흥여행도 이랬을까

덜컹-, 차의 뒤편에서 무언가가 걸린 느낌이었다. 평소 같으면 별 일이 아니었겠지만,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상황 속에서 약간의 흔들림은 오감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친구와 나는 그 흔들림이 멈추는 순간까지 정적을 이어갔다. 그 찰나의 순간, '나가볼까 말까'를 수백, 수천번을 고민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액셀을 밟아, 기존에 가던 길을 향했다. 추웠기에 못 내렸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그 분위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지 않았다.


친구와는 나오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아직 불안함이 계속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무사히 나오고 나서야, 안도감에 그때 느꼈던 느낌과 생각을 친구에게 말할 수 있었다. 친구는 그 일에 대해 크게 연연치 않는 듯 보였다. 내가 느꼈던 것도 기가 허해서 잘못 판단하였던 것이길 빈다.


이러한 일로 끌어올린 여행의 흥을 다시 떨어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블루투스 스피커도 내장이 안된 이 차에서 핸드폰의 소리를 크게 키워 흥을 다시금 올려본다.


한 번의 고비가 지나서 일까, 밥을 먹은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던 나의 배는 다시 한번 알람을 울린다. 아무래도 방금 너무 긴장을 한 통에 금방 허기가 졌던 것 같다. 역시나 아무것도 계획을 안 했던 우리는 다시 먹을 장소를 선택해본다. 로컬이 추천해준 숲길이 비록 실패하였지만, 우리가 잘못된 시간에 찾아가서 실패한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로컬들의 추천을 믿고, 로컬들만의 맛집으로 향한다. 제주도의 자랑인 흑돼지와 회 중에 선택한 것은 흑돼지였다.


그렇게 로컬이 추천해준 흑돼지 집을 목적지로 출발한다. 가는 길목 길목은 어두컴컴했고, 산길을 타고 들어갔다. 저녁 이어서일까, 오가는 차량도 거의 적었고, 우리는 점점 관광지에서 벗어나 이동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믿고 30분 동안 이동하여, 로컬들의 추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장소 근처에는 관광요소도 없었고, 시내도 아니었다. 작은 마을 느낌의 동네에 정말 그 고깃집 하나뿐이었다. 친구와 나는 '이런 게 바로 맛집 느낌이지'라는 생각에 입을 막으며 감탄했다. (숲길에서 한번 받은 상처로 솔직하게 기대를 안 했는데, 누가 봐도 느낄 수 있는 로컬 맛집 분위기에 기분이 더욱 업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꽤 손님들이 있었다. '아무리 로컬 맛집이라고 해도, 맛이 있으니 손님들이 있는 건 당연하겠다'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삼겹살로 주문까지 마쳤다. 긴장이 사라지고, 콧 속으로 들어오는 고기 냄새는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삼겹살이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었다.


주위를 살피니, 손님들의 제주도 방언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듣는 방언에 놀랐고, 삼겹살을 기다리며 나온 기본 반찬에 더 놀랐다. 특히 제주도만의 양념장인 '멜젓'은 처음 본 것이었다.


그리고 고기님께서 드디어 우리의 테이블로 입장하셨다. 생고기로 먹어도 될 것 같이 먹음직스러우셨으며, 영롱한 비주얼을 갖고 계셨다. 여기에다가 나의 고기 굽는 솜씨를 가미한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그렇게 한점 한점 소중히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앞 면을 굽고, 뒷 면을 굽고, 컷팅을 하고, 옆 면까지 노릇하게 구우며, 고기의 퀄리티에 해가 가지 않도록, 한 점 한 점 소중하게 구웠다. 그리고, 한 점 입에 넣었다. 녹는다. 녹아. 로컬의 추천은 역시 틀리지 않았던 것이고, 숲길에서의 실패는 시간을 잘못 선택한 우리가 틀렸던 것임을 여기서 바로 느꼈다. 특히 양념장에 찍어 먹을 때, 그 풍미는 배가 되었다.


우리의 고기는 짧은 시간에 사라지게 되었고, 우리는 정말 풍족한 얼굴로 다시 차로 향할 수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여행 계획 때부터 맛집에 더욱 기대를 하기 때문에, 실망감을 느꼈던 적이 많았는데, 기대치가 낮으니, 여기서 얻는 효용이 컸다. 이런 게 즉흥여행의 묘미인가 싶었고, 계획 여행에서 얻었던 스트레스가 없는 나의 모습에 놀랐다.)


하늘은 굉장히 어둡지만, 배도 든든하고, 흥도 오른 우리는 숙소로 향할 생각이 없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제주도의 메카인 곳은 한 곳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천지연 폭포로 곧장 향하기로 했다. 우리 둘 모두 수학여행 때 방문해본 경험뿐이기에, 밤에 향하는 건 처음이었고, 야경을 본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여행의 또 하나의 묘미는 야경 구경이지 않을까, 국내외 여행 때마다 야경은 꼭 보러 갔었다. 낮의 햇살이 주는 느낌과 밤에 어둠이 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지연 폭포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면서 조사해보니, 그렇게 장관이라고 한다. 기대감을 품고 빠르게 천지연 폭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천지연 폭포의 입구를 보니,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추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감정도 내게 들어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입구에서부터 폭포로 가는 모든 길들이 그 당시의 추억을 불러일으켰고, 친구와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멀리서 폭포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원한 소리에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고, 소리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눈으로 담을 장관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심장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폭포를 향해 나아갔다. 천천히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폭포 소리도 점점 거세어 갔다. 그리고 천지연 폭포를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광경과는 다른 은은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낮에 천지연 폭포는 웅장한 호이로 표현한다면, 밤의 천지연 폭포는 숲 속에 숨어 사는 용의 자태로 표현될 법했다. 인위적으로 쏘는 불빛도 한 몫하여 그 분위기가 굉장히 아름다웠다. 5분가량은 가만히 서서 쳐다만 본 것 같다.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본 풍경, 야경 중에 단연 1등이었다.


약 30분가량 천지연 폭포의 장관을 눈에 가득 담으며, 제주도에 왔음을 다시 느꼈다. 우리는 눈으로 천지연 폭포를, 입으로는 로컬 맛집의 삼겹살을 담으니, 이제 남은 건 제주도의 분위기를 귀로, 피부로 담을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제주도의 핫 플레이스로 향할 생각을 갖고, 숙소로 향했다.


모든 게 훌륭했다. 즉행 여행이어서 기대감이 낮아서였을까, 모든 일에 행복했고, 작은 일에도 행복했다. 매일 계획을 하며 고생한 노력보다 큰 효용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은 우리의 흥의 최대치였다. 이 흥 그대로 핫 플레이스에 쏟으면 모든 것이 훌륭할 것이다. 이 기대를 갖고 숙소에 도착했고, 기존 예약한 장소와 방으로 짐을 들고 올라갔다.


안은 굉장히 조용했고, 아늑해 보였다. 분위기도 훌륭했고, 숙소마저 훌륭하여 우리 여행의 첫날의 훌륭한 마무리가 될 것 같았다. 우리 방문에 서서 방문을 열려는 순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잠겨있다. 주위를 살피니 열쇠도 없는데? 근데 문 앞에는 이미 사용한 수건도 보였다.


뭐지? 방을 잘못 알려줬나 싶어서,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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