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인 내가 누군가를 요양하며, 글을 쓴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어린 네가 뭘 알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또한, 나는 옆에서 매일 요양한 것도 아니었고, 하루에 4~5시간 거들었을 뿐이다.
이러한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느꼈던 감정과 후회가 나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이다. 개인의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서, 멀리 살고 있어서, 언젠가는 찾아뵈야지, 라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찾아뵙지 못했던 나 자신이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수차례 볼 수 있었다.
특히, 빨리 경제적인 여유를 찾고, 보답하자는, 미래지향적으로, 현재의 중요성을 놓치는 멍청했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좀 더 찾아뵙고, 좀 더 자주 여행도 가고, 좀 더 맛있는 것도 해드릴고, 사드릴걸, 하는 수많은 후회들이 내 머릿속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나갔다. 할아버지 댁을 들어가는 문 앞에 서게 되면, 누군가 주문을 걸어놓은 것처럼 머릿속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많으면 한 달에 3~4번, 적으면 한 달에 한 번, 그나마 수도권에 살고 계셨기에 가까워서 방문한 것이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더욱 쉽게 더욱 많이 방문할 수 있었는데 라는 후회로 돌아오기 일수였다.
이러한 후회를 하는 건, 이 상황 속에서 나뿐일까 생각해본 결과, 다른 이들도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면 내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 후회와 감정을 늦기 전에 알게 된다면, 후회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찾아뵙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 스스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써내려 가며, 다시 한번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셨는지, 글로써 남기어 간직하고 싶었다는 나 스스로의 만족까지 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남긴 과거의 나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를 지나, 먼 훗날 읽을 나에게까지, 글이라는 소중한 요소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그 느낌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후회에 대한 반성과 추억의 거대화는 아직 옆에 계신 할머니에게 더욱 잘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해 준다.
이러한 이유들로 글을 써내려 갈 생각이다. 대부분이 요양을 하며 느꼈던 감정과 추억들을 써 내려가지만, 요양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며, 좋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이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