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고독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오늘도 그곳으로 들어갔다. 한 노파의 그 손길이 하루를 마무리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듯,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면서도 거리낌도 없이 그렇게 그 가게의 미닫이문을 연다. 그 시끄러운 아재들의 말들이 그곳에서 한참을 떠돈다. 천장과 벽면 그 사이 어딘가라고 칭하기도 굉장히 애매한 공간에 걸린 티브이도 그 가게에는 항상 있다. 그 가게의 티브이에는 오늘도 야구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나오고 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그렇다. 한창 프로야구는 끝이 나고 하이라이트를 틀어줄 시간이다. 난 항상 그때 그 가게로 들어가니 하이라이트가 더 익숙하다. 야구 경기를 라이브로 관람하는 것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 아재들의 알코올 향으로 덮인 이야기들과 티브이의 야구 중계도 막지 못하는 분명한 소리가 있다. 내가 만들어낸 그 소리는 노파가 꼭 들어야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따르릉"
무심하게 어서 오라는 눈인사를 건네는 노파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아재들의 수다도 조금 소리가 줄어든다. 먼저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아재들의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와 눈치가 내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나도 사람을 훑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가게에 매일 이 시간 즈음에 오는 건 나다. 이 가게, 노파의 관점에서 봐도 낯선 이들은 저들이다. 자기네들이 이곳을 와봤자 얼마나 와 보았겠는가. 갑자기 난 저들의 시선에 대한 충동적인 불쾌함이 들며 저들이 아니꼬워진다. 힘든 노동을 마치고 고단해서일까.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가볍지만, 무거운 텐션으로 술 한 잔을 찌끄리고 집에 가고 싶다. 내가 내게 주는 삶의 위로인 것이다. 사실 그리 큰 위로도 아닐 수 있다. 위로라고 해서 크게 뭐 별건없다. 그저 튀긴 통닭 반 마리 시켜놓고 맥주 조금 들이켜다 집으로 떠난다. 내겐 말동무도 없다. 야구만 묵묵히 보다 올 때도 있고, 저 늙어버린 노파가 밤늦게까지 취객들 상대하며 닭 튀기는 모습, 기름들이 하도 튀어서 오히려 정상인 부분이 적은 얼룩덜룩한 노파의 팔을 멍하니 보다 올 때도 있다. 오늘도 내면의 생각에 아주 무겁게 추를 달아 주량은 적게, 사유는 많게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닭 반 마리를 주문한다. 사실 주문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저 노파는 나에게 갖다 준다. 난 가게에 들어온 순간부터 아무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 가게에서 손님에게 닭 반 마리를 파는 법은 없다. 그렇다. 난 예외였다. 세상에는 일상을 보내고 이제 잠이 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방금까지 헬멧을 착용한 자국 때문이 내게는 빨갛게 남았다. 자국이 남은 이마에서부터 나는 그들과 비교하여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예외가 아니겠는가. 매일 오는 내게 노파는 어느 순간부터 가격도 절반으로 받으며 닭 반 마리를 내어준다. 항상 시켜놓고 반도 넘게 남기고 떠나는 나에 대한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노파의 배려이면서도, 공사판 인부에게마저 버려지는 닭이 아까운 사장님의 심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자리에 앉은 난 아무 말이 없다. 침묵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늘마저도 예외가 없었다. 눈만 꿈뻑거린다. 시끄러운 손님들이다. 옆 테이블을 무심코 보게 된다.
"내가 아주 우리 엄마 때문에 하도 울화통이 터져서 마음만 같으면.. 성님은 내 성깔 알 것 아니유? 엄마랑 너 죽고 나 죽자 하고도 남았다니까유." 바로 나와 눈이 마주치기 딱 좋은 자리에 앉은 주름 많은 남자가 이야기를 꺼냈다.
"찬기야, 참 고생이 많다 네가. 뭐 그런데 어쩌겠냐. 어머님이 인생 말년에 그러하시겠다는데. 그냥 네 키우느라 젊은 날 펼치지 못한 일종의 꿈같은 거 하시는 걸로 생각하고 내버려 둬라." 체념한 듯 안경다리가 이상해 주저앉은 안경을 쓴 남자가 찬기라는 인물을 위로한다.
"아니, 성은 나 같은 상황이었으면 그냥 내버려두라고 할 수 있겄소? 우리 어머니야. 내 어머니유. 세상 누구든, 막말로 성도 날 쓰레기 호로자식이라고 욕할 수도 있겄지만, 난 우리 어머니가 확 다리가 부러져 몸 져서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으면 참 좋겠소." 과감하고도 자식의 도리를 생각할 때 아무나 쉽게 뱉지 못하는 찬기의 말에 듣는 이들은 모두 조용해진다.
"당신 남편이 젊은 날 링 위에서 흘린 피에 대한 보수를 우리에게 가문의 부흥을 위한 마지막 선물로 남기고 갔는디 그 돈을 그리 날려? 인생에서 자리끼를 들이킬 황혼기에 웬 옆집 할배에 눈이 먼 게 말이 되냐고. 오늘 또 둘이 면세점 가서 둘이 쌍으로 진주 목걸이 해왔다고 나한테 자랑하는데, 진짜 내가 내 아비 생각이 나서 억장이 무너지지. 사람이 어찌 그리할 수 있는겨. 우리 어머니가 차고 있는 목걸이 바로 내가 잡고 가격 확인했슈. 글쎄 0이 몇 개 들어가던지. 세다 포기했댜, 힘들어서. 참 우리 어머니가 징 해서. 우리 어머니 목걸이 찬 상태에서 내가 가격 확인하니 좀 캑캑대시더라고. 근데 어쩌면 난 그리 죄송한 마음이 하나도 안 드는 겨. 인간 말종인 증거겠지, 뭐. 지는 천벌받을 각오야 이미 진즉에 끝났어유." 찬기는 무거워졌다. 그는 이미 넋이 나가있었다.
"자, 어머니도 얼마나 울적하시고 마음 아프셨겠냐. 같이 힘내자." 주저앉은 안경을 쓴 남자는 다시 한번 찬기를 격려했다.
"성님은.. 잘 되셨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 찬기는 화두를 돌려본다.
"아, 아직. 경찰 쪽에서도 아직 소식이 없네. 그 새끼 아주 독한 놈이라 쉽지 않을 거야." 안경 쓴 남자도 이내 씁쓸한 듯 안주로 손이 간다.
"성님, 진짜 그것도 질 나쁜 새끼요. 어떻게 사람이라는 게 그 돈을 훔쳐 달아나? 더군다나, 그놈은 그 돈이 어디 쓰일지 알잖아유. 진짜, 걔는 그러면 안 됐지. 그저 일개 소매치기야 사연을 몰라 백 번 양보해 그렇다 쳐도, 그 새끼는, 그 새끼는 그러면 안 됐지. 그런 건 금수여, 금수." 찬기의 욕이 테이블에 쏟아지자 다시 한번 이곳의 분위기는 무거워진다.
"그러게." 크게 할 말이 없는 안경 쓴 사내였다.
"그래서 아들은 뭐라 그러유?"
"다른 아버지들은 더 공부하라고 밀어주겠다고 안달인데, 제 아빠는 왜 아들 인생에 방해만 되냐고 하더라. 지 이렇게 돈 때문에 대학 못 갈 줄 알았으면 젊은 날 실컷 놀았을 거라고. 지만 반에서 돈 없어서 대학 못 갈 상황이라고 하네."
"아무리 아들놈이래도 말을 가려서 해야지유. 아비라는 사람헌티 그게 뭐요?"
"자기 딴에 얼마나 대학에 가고 싶어서 그랬겠냐. 그래도 아들놈은 얼마나 착한데." 안경 쓴 남자도 아까의 찬기처럼 넋이 나갔다. 그는 그의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한 듯하다.
"곧 잡힐 거요."
"말이라도 고맙다." 찬기와 안경 쓴 남자는 큰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하였다.
"사필귀정이래요." 테이블에 앉은 찬기, 안경 쓴 남자 말고 또 다른 마지막 남자가 처음 입을 뗐다.
"뭐라는겨? 뭔 양인이 갑자기 들어와서 말을 하는겨." 찬기는 애꿎은 남자에게 화풀이다.
"일은 바른대로 돌아간답니다. 헤헤."
"그래, 퍽이나 그리 돌아가겠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안 돌아가시는겨?"
"헤헤."
"이 새끼가. 넌 진짜 정신이상자만 아니었어도."
"찬기야, 참아라. 이러는 거 알잖아." 화가 솟은 찬기를 말리는 건 역시 안경을 쓴 남자였다.
"근데 얘는 어쩌다 이리 된 거요?"
"얘, 나도 얘네 동네 근처에 살던 아주머니한테 들었는데 이래 봬도 어엿한 가장이었대. 아들 하나 건실하게 키워보겠다고 자기 아내랑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더라. 그 노력은 차마 말로는 표현도 못 할 정도였다 하대. 거기에 둘째까지 출산이 임박했었다더군." "헤헤."
"근데 어쩌다가 지금은 이렇게 천치가 된 거어유, 성?" "자기가 밤에 야간대학 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니 난장판이더래. 아들의 몸은 피로 뒤덮인 만신창이고, 아내는 사시나무가 떨리듯 수족은 수건으로 묶여있고 아내 옷가지는 한없이 찢겨있었다더라. 그 바닥에는 그녀의 눈물과 피, 그리고 양수가 섞여 아주 난장판이었다더군. 집에 와서 얼마나 쟤가 허탈했겠나. 나 까짓 게 무슨 글공부한다고.. 괜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그때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켰을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자책했겠지."
"아이고.."
"허허." 어눌한 남자는 씁쓸한 듯 허탈의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집 나왔니다. 허허." 그렇게 대화를 일단락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 대화를 끊어내느라 힘을 쓴 듯 그 또한 역시 넋이 나가있었다.
"다들 짠이나 하세." 그렇게 안경 쓴 사내의 말에 맞춰 모두 술을 들이켰다. 그때 나도 같이 맥주를 목으로 넘겼다. 건배만 같이 하지 않았을 뿐. 난 이미 저 무리의 일원인 것만 같았다. 서러운 삶에, 일상적인 삶에 대해 예외인 것만 같은 저들에게 나는 그렇게 동화된 것만 같았다.
세 남자는 결제를 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그들이 먹은 테이블에는 잔반과 남은 닭은 하나도 없었다.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내 테이블에는 내가 먹다가 남은 닭 몇 조각이 있다. 반으로 잘린 통닭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저 닭도 온전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흔히 이 가게에서 파는 통닭과는 엄연히 다른 모습으로 테이블에 나왔다. 여기서는 저 닭도 온전한 모습을 띄는 모든 닭과 다른, 예외였을 것이다. 예외의 모습을 띄는 저 통닭도 소중하기 매한가지다. 지금도 누군가는 저 통닭을 야식으로 먹기를 무척이나 갈망하고 있을 터이다. 저 통닭을 남기면 난 또 흔치 않은, 마치 음식 소중한 지 모를 정상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예외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 느꼈다. 그래서 허기지지 않았음에도 우걱우걱 입에 모두 집어넣었다. 특이한, 예외로 치부되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무척이나. 그렇게, 다른 사람처럼 통닭을 다 먹어치웠다.
그렇게 결제를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귀가하며 그들을 생각해 본다. '저 세 남자는 모두 일상적이지 않은 그런 일상들을 보냈어. 어쩌면 저들의 일상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두의 일상 자체에 특이한 것 하나하나가 깃들어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난 평범하고 싶었던 욕구에 대한 대가를 치루었다. 알딸딸한 탓에 전봇대를 겨우 부여잡고 전봇대 아래에 속을 개워냈다. 그리고 밟지 않게 서서 전봇대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속이 그나마 조금 편해짐을 느꼈다. 그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남들보다 퇴근이 늦은 고단한 내 일상적 삶에는 그래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어머니도, 나를 사랑해 주는 아내도, 늦게 들어오는 날 웃으며 반겨주는 아이들도 있다. 돈을 들고 도망간 놈도 아직 내 인생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있었어도 내 옆에 있던 남자들에게는 나의 삶이 무척 일상적인 삶이다. 귀갓길에 넋을 차려보니 행복이다. 행복이 내 귀갓길에 많다 못해 흩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