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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흐려지는 걸까, 선명해지는 걸까?

by 멜로디


분명 그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분명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시간이 지나도 당신의 좋았던 점만 생각이 나는 걸까?

만약에-를 아주 싫어하는 내가 왜 자꾸 '만약 그때 내가 이랬다면…'을 수십 번 떠올릴까.


난 늘 무엇이 옳고 그른가, 나에게 어떤 선택이 이익을 줄까, 무엇이 리스크(상처)를 최소화할까만 생각하며 살았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적으로 좋아도 이 관계가 오래갈 것 같지 않다거나, 서로를 힘들게 할 것 같은 관계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게 현명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게 옳았던 걸까?

정말 우리가 계속 함께 했다면, 내 예상대로 그렇게 안 좋게만 흘러갔을까?


돌이켜보면

그냥 난 자신이 없었던 거다.

당신에 대한 마음의 확신이 없는 게 아니라,

너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줄 자신이 없었던 거다.

언젠가 내가 당신을 실망시킬 거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내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다. 사실은 당신은 그것조차 감수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한 편으로는,

지금은 그 기억들이 조금씩 흐려지면서 그 사람의 좋았던 것들만 남아 아직도 이런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분명 내가 그때 느낀 것들, 그리고 그 결정은 잘한 일이라고, 후회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지만, 두렵게도,

어쩌면 그 기억이 흐려진 게 아니라 이제 와서 더욱 선명해진 건 아닐까?

그때는 내 감정, 내 고민과 마음의 어려움이 뒤섞여 판단력을 흐리게 했던 건 아니었을까?

오히려 시간이 지나 더욱 단단해지고 건강해진 지금의 내가 더 선명하게 그 시간을 볼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의심들.


기억이 흐려지는 건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건지.

그 사람이 미화되고 있는 건지 더 또렷해지고 있는 건지.

분명한 건 나는 바보라는 거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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