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모름지기 동네책방이라 하면 정감이 넘치고, 소소한 오고 감이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 주인장의 스타일에 따라 어떤 독립서점은 조용하고, 또 어떤 서점은 무척 활기가 넘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금방 공간의 분위기를 알게 되는데, 공기의 흐름을 통해 먼저 몸으로 느낀 뒤 곳곳이 붙어있는 크고 작은 메모와 책들을 보면 서서히 선명해져 간다.
별방구의 분위기는 조용한가, 아님 활기찬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매일의 나날들을 채우다 보니 알게 된 것은 이곳이 꽤나 정적인 공간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그렇지만 어쩌면 나만의 오해일 수도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손님들을 향해 선뜻 다가가 어떤 책을 좋아하시는지, 이런 작은 문구들은 좋아하시는지, 잠깐동안 서로의 취향을 묻고 나누는 그런 스몰토크에 능수능란하지 않은 나로서는.. 늘 그저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손님을 향해 가능한 힘차게 미소 띤 인사를 건네고 이내 시선을 거둘 뿐이다. 그리곤 감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은 숨긴 채 손님이 이곳에 머무는 내내 불편하지 않도록 나의 이런 콩닥임이 가닿지 못하도록 억누르는데 애를 쓴다. 간혹 책을 추천받고 싶다는 말이 담긴 대화를 엿듣거나 손님이 뭔가를 궁금해하는 상황을 인지했을 땐 이 순간 내가 그 틈에 끼어들어도 되는지 마는지를 한참이나 골몰하다가 마침내 손님이 책방 문을 밀고 나가실 때까지도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다. 그리고 이내 안도의 한숨. 괜히 말을 건넸다가 불편하게 할 뻔했구나, 생각하며 찾아주신 걸음에 대해 어쩐지 성에 차는 화답을 전하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쉬움을 느낀다.
이런 고민과 생각을 품고, 다소 소극적인 사장이 된 이유에는 어쩌면 사장이 되기 이전에 내가 그런 관심을 불편해하는 손님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옷이나 물건을 쇼핑할 때, 조용히 유심히 살피며 혼자 고민하는 걸 선호한다. 한참 살까 말까 고민하는데, 친절한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고 뭔가를 설명해 주시면 고맙고 흥미로운 마음도 들지만 이내 빨리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뭔가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정말 사려고 했던 물건이었더라도 괜스레 아무도 주지 않은 알 수 없는 부담감을 느끼며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어 진달까. 내가 백화점의 친절함이 늘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몇 년 전에 등장했던 ‘추천을 받고 싶어요’와 ‘혼자서 구경할게요’를 바구니에 써두고 선택할 수 있게 만든 어느 화장품 샵의 이미지를 보고는 “이거 완전 날 위한 거다!”라고 외쳤을 정도니.. 물론 친절함과 자세한 설명이 결코 싫지 않고 반가운 마음이지만, 그냥 그걸 잘 못 견디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혼자 고심하며 고민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한편으론 식당이나 카페에서 메뉴를 고를 때는 약간의 설명을 오히려 반기는 것 같다. 선택장애가 심한 나는 주로 신메뉴나 안 먹어본 메뉴에 대한 질문을 스스럼없이 하는 편이다. 모르는 상태로 호기심에 주문했다가 맛없는 한 끼가 되는 불상사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미지의 불안에서 피어오르는 질문이자 솟아나는 용기랄까.
그렇다면 ‘책방’은 어떤 곳일까. 책에 있어서 나는 추천을 받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추천을 받지 않고, 책방에 가면 늘 혼자 책을 고르고 샀다. 어쩌면 내가 어릴 때부터 늘 가던 우리 동네의 동양서림이 책을 따로 추천해 주거나 선뜻 손님에게 말을 건네는 책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냥 동양서림에 가서 매대에 올려진, 혹은 서가에 꽂힌 책을 혼자 둘러보고 마음이 가는 책을 품에 안고 오는 식의 방문이 내게는 익숙하다. 그리고 나는 그게 늘 좋았다. 그 방식에 불만이나 아쉬움, 혹은 뭔가 거리낌이 없었기에 시간이 흘렀을 때 나도 자연스레 그런 책방지기가 된 것 같다. 괜히 손님의 선택에 어떤 섣부른 첨언을 더해 혼란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아니면 그냥 내가 좀 겁쟁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괜히 망칠까 봐, 싫어할까 봐, 불편해할까 봐 등등의 부정적인 엔딩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도망치는 겁쟁이의 마음 말이다.
오만가지 생각 끝에 ’그냥 내 스타일대로 하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하루는 친구와 성수동 나들이를 갔다. 평소 관심 있던 브랜드의 오프라인 공간에 직접 가서 입어보고 구경해 보자는 친구의 말에 이끌려 시작된 날이었다. 쉽게 말해 쇼핑의 날.
여러 공간 중 한 곳은 찾기 쉽지 않은 건물의 3층에 위치한 곳이라 굉장히 아지트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작업실처럼 옷과 가방을 전시하듯 디피해두고 자유롭게 입어볼 수 있는 곳이었다. “오, 이런 곳에 이런 느낌으로 있구나~”낯설면서도 신기하게 둘러보며 들어가는 우리에게 직원으로 보이는 분께서 다가와 말을 건네셨다. 여기를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평소 우리 브랜드를 잘 알고 계셨는지 등등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패션과 관련된 여러 대화로 이어졌다. 대화를 나누며 알고 보니 그분은 이곳의 디자이너셨는데, 옷의 디테일한 포인트 속에 담긴 의미와 어떤 생각과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쉬지 않고 풀어내셨다. 옷에 대한 정보를 미처 몰랐을 땐 평범한 후드티로 보이던 것이 설명을 듣고 나니 이제는 그 숨은 의미와 디테일을 품은 특별한 아이템으로 보이는 마법.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대화의 마무리로 친구는 후드티를 결제했고, 그런 친구의 선택에 처음에는 나도 아앗..? 했으나 얘기를 나누고 나니 아하~ 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친구와 룰루랄라 그곳을 나오며 생각했다. 나도 지금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손님들과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어도 좋겠다는 어떤 마음이 피어올랐다.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그곳에 대한 여러 생각과 의미를 전해 듣는 과정이 생각보다 좋았으며, 그 친절과 다가옴이 그리 불편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공간을 찾아주신 분들께 용기 내 다가가 대화를 나누고, 설명을 전하고, 소개하는 게 나로서 그분들에게 전할 수 있는 최선의 화답이자 감사 인사가 아닐까. 그러니까 이렇게 찾아주신 분들께 주인장의 마음으로 살포시 다가가는 게 단지 불편함만 주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같은 공간에 머물며, 늘 비슷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이들이 찾아오는 공간에 머문다는 것은 생각보다 귀한 특권이다. 그렇게 찾아온 소중한 만남을 그저 떠나보내기보단 먼저 손 내밀고 마음을 표현해 보자고, 그런 작은 다짐을 품은 날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며 느끼는 깨달음. 그게 청년 사장으로서 부족한 나를 조금씩 채워준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이런 게 바로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르듯 나아가는 게 책방지기의 여정인 걸까? 부디 이 속도가 너무 느려 한 번씩 넘어지거나 어깨를 부딪쳐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그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전한다.
여전히 손님이 오시면 반가움과 동시에 오만가지 생각에서 가슴이 요동치는 소심한 사장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 심장의 박동을 조금씩 즐기며 인자한 미소를 띠어보려 한다. 멋진 꽃다발을 만들면서도 편히 대화를 건네주시는 꽃집 사장님의 여유와 지친 하루 끝에 작은 농담으로 웃음 짓게 만드는 택시 기사님의 재치를 존경하며,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초보 자영업자이자 책방지기다. 언젠가는 그분들의 여유와 재치가 내게도 깃드는 날이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내가 되기 위해 이렇게 소심한 마음을 글에 기대어 고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