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환하게 채워주는 따스한 발걸음

by 별방구

손님과 낯을 가리는 책방지기의 쥐구멍을 찾아서

손님이 들어오시면 나는 마치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호다닥 책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다른 걸 하고 있던 중이라도 괜스레 긴장한 나의 마음을 들키까 책 속에 숨어드는 기묘한 습관이다. 언뜻 보면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주인장의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 그 속에서는 온갖 마음의 소리가 요동치고 있다. 당연하게도 그 순간 나는 분명 책 속 문장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고 또 다음장으로 종이를 넘기기도 하지만, 손님이 나가신 후 다시 그 페이지를 보면 한 문장도 제대로 읽은 게 없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부담스럽지 않게 뭔가에 골몰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 어쩌다 보니 이제는 그게 손님을 편안하게 만드는 나만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태를 의도치 않게 3년째 유지 중이지만, 진정한 무관심이 내재된 시선 피하기(!)는 결코 아니기에 나는 늘 온감각을 곤두세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무관심한 척 손님을 향해 귀 기울이던 찰나에 누군가 내게 슬쩍 말을 걸어주시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 하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곧장 미소로 다가가 언제 책을 읽고 있었냐는 듯 신나게, 그러나 신난 마음이 혹여 부담스러울까 애써 감추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손님이 먼저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사장의 면모랄까. 이런 나의 부끄러운 내면을 글로써 드러내니 이제는 전처럼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숨지도 못하겠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이런 순간, 내 눈은 책을 향해 있지만 실질적으론 하나도 읽어내지 못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쥐구멍에 숨는 것도 아닌 오묘한 상태로 지내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 DM으로 이번 주 토요일 영업시간을 묻는 메세지가 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안내해 드리자, “그날 꼭 별방구에 가고 싶어서요!”라는 답장이 왔다. 괜히 벅찬 마음이 들게 만드는 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토요일이 찾아왔다. 아직은 쌀쌀한 4월의 오후 5시라 서서히 해가 질 무렵이었다. 메세지를 주신 손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왔다 가신 건지, 아니면 다른 일이 생기셔서 못 오신 건지 알 수 없어 궁금한 마음이 들던 참이었다. 차분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한 손님이 들어오신다. 무척이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메세지를 보냈었는데, 일이 좀 늦어져 겨우 문 닫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며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진심이 담긴 벅찬 숨과 인사말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곧이어 내게 주려고 가져왔다고 하시며, 손에 들고 계시던 음료와 쿠키를 건네 주셨다. 여기서 드시라고, 별거 아니라고 수줍게 전하는 말씀을 듣고, 나는 물밀듯 들이치는 감동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부러 계동길 끝자락에 있는 ‘별방구’를 향해 찾아와 주신 마음과 발길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이렇게 선물까지 주시니 나는 감동의 도가니탕을 수영하는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마음 한편으로는 이 감사함을 달리 어찌 표현할 방도가 없어 조용히 마음을 동동거릴 뿐이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손님은 천천히 별방구의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하셨다. 전에도 오셨었다고 하시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나의 비좁은 머릿속 저장공간을 한탄하게 되는 순간이다.

만남은 짧지만, 마음은 가득히

손님이 고르신 책을 정성껏 담아드리며, 마음을 담은 선물꾸러미를 살포시 넣어드렸다. 내가 받은 이 사랑에 비하면 한없이 소소해서 자꾸 더 주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손님이 가시고, 나는 한동안 이 온기에 파묻혀 자리에 앉아있다가 이내 퇴근 시간을 한참 넘기고 나서야 문을 닫고 나올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도 계속 뭔가를 더 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내내 들었다. 그런 오묘하고도 몽글한 마음을 부여잡은 채,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에 접속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감격에 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아까 오셨던 손님께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장문의 메세지를 보내주신 것이다. 그 메세지 속에는 별방구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한껏 담겨있었는데, 그런 마음을 전해 받은 건 별방구가 계동길에 온 일 년여의 시간 중 처음이었기에 나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넘어선 행복을 느꼈다.


나를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뜨린 손님의 장문 메세지


늘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이 소극적인 사장의 모습을 좋게 봐 주시고, 덕분에 이곳을 더 따스하게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담긴 문장을 읽자 나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온기를 느꼈다. 나의 늘 불안하고 고민스럽던 어떤 한구석을 일순간 녹아내리게 해준 진심이었다. 그리고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쭈구리가 되지 말고, 이 모든 것을 당당히 마주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불안정하고 고민으로 가득하던 1년 차에 예상치 못하게 받은 큰 용기이자 애정의 마음이었다. 아마 10년 뒤, 20년 뒤에도 잊지 못할 하루로 기억될 순간일 것이다.


잠시 쉼이 될 수 있는 곳, 조용히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써의 몫을 채우는 ‘별방구’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옳고 그름이 없이, 그저 이 온도에 가까운 이들에겐 따스하고 선선하기를. 조금 다른 온도의 이들에겐 색다른 뜨거움과 차가움을 줄 수 있기를. 그렇게 소심하고 불안하던 나의 마음에 용기를 심어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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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