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감정을 네게도 선물하고 싶어

나만의 큐레이션이 만들어지기까지

by 별방구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은 다르니까.

나는 책을 읽고 누군가와 나누기 보단 그 세상을 나 홀로 곱씹고 음미하기를 더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책방지기가 되기 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게 늘 망설여졌다. 나에게는 마음의 위로가 되어준 책이 다른 이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맞지 않는 책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대방의 실망이 괜시리 두려워 찾아오는 망설임이었다. 그러나 늘 망설이고, 주저하며 도망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실망을 시키더라도, 매번 상대에게 꼭 맞춘 책을 전해줄 순 없다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내는 날도 있었다. 100%의 성공과 만족은 욕심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위안은 무책임한 회피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도망만 치고 입을 꾹 다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어느 날엔 아쉬움이 더 컸다면, 또 어느 날엔 만족감이 더 높기도 하는게 인생이니까. 미움받을 용기. 그게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책 추천이 조금 빗나갔다고 해서 날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느낀 감정을 네게도 선물하고 싶어

그러던 내게도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바야흐로 2019년. 내가 추천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게 만든 한 소설집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 여느 때처럼 동양서림에 들러 신간 코너를 살피던 중에 나를 끌어당긴 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읽고나니 너무도 좋아 그 여운이 날 마구 휘감았다. 홍대병이라고 할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가 더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지면 좋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만 알고 싶은 그런 이중적인 심리. 그리고 다들 모르는 숨은 명작을 내가 먼저 발견해 냈다는 묘한 짜릿함. 그러나 진짜 명작을 만나면 그건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다. 내가 느낀 그 감정을 어서 나의 소중한 이들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은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먼저 달려 나가 버린다.


한참 소설에 빠져 살던 그 시기에 읽은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는 마치 한줄기의 여름이슬이 맺힌 초록잎처럼 빛나고 반짝였다. 그리고 그때가 내게는 마침 고3 입시가 끝난 겨울 방학 시기라 이제 문제집과 학습 서적은 모두 집어던지고 제대로 된 책을 읽어보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친구들이 곁에 많았다. 그렇게 입시가 끝나고 잠시 텀이 생긴 그 시기에 나는 친구들을 이끌고, 애정하는 동양서림으로 달려가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읽어보라고 주구장창 추천을 한 것이다. 초중고 12년을 치열하게 보낸 내 친구들은 환기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오히려 나의 추천을 기꺼이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들의 손에는 여름의 빌라가 쥐어졌다.


그 이후로는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이 흔치는 않았다. 추천해준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몇몇의 후기를 뒤로하고, 각자 대학생활을 하느라 바빠진 탓인지 우리는 만나면 책 얘기보다는 각자의 학교생활과 전공, 새로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어디 갈지 정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만나 산책하며, 책방에도 들리고, 또 하염없이 걷는 날보다는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식당을 미리 정해서 먹고, 곧바로 카페로 가서 아아와 라떼를 마시기 바빴다.


정체를 숨긴 채 자라난 책탑

하지만 그 시간들 사이로 나의 소설 사랑은 멈추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내가 애정하는 작가님들께서는 계속 글을 써주셨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나만의 독서 취향을 확립해 나갔다. 누군가에게 나누기 보단 내 안에 차분히 책탑을 쌓아간 것이다. 그리고 남모르게 내 안에 쌓인 그 책탑은 나의 작은 책방을 시작하면서 밖으로 꺼내보이게 되었다. 한 권씩 애정하는 소설들을 책방에 두고, 내가 좋아하는 구절과 소개를 짧게 적어둔 종이들이 쌓이자 어느새 별방구의 큐레이션이 되었다.

그래, 그 실망도 내 몫이야.

나의 취향이 다른 이에게는 실망과 어긋남으로 다가갈까 봐 조마조마하던 그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용기를 내려고 한다. 그 용기를 내기까지 나에게 먼저 미소로 다가와 책 소개를 요청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뭐든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그 연습의 시간 속에서 쌓여간 괜찮다는 안심은 이제 나를 더 용감하게 꺼내 보일 수 있게 만든다.


취향이 쌓여가는 엉겹의 시간

또 때때로 어떤 용기에는 연습이 필요하지만, 다행히도 취향을 쌓아가는 데는 연습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꾸준히 쫓고, 따라가다 보면 나의 색깔이 점점 선명해진다. 세상에는 오만가지 빛깔이 있듯이 그 수많은 빛깔 속에서도 각자의 색깔은 분명 있다. 여전히 나의 색은 짙어지고 있다. 이제 그 색깔을 내 안에만 두지 말고 종이에 칠해보자. 오롯이 그 색깔을 보고 칠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 색이 아직 흐려 잘 안보일지라도 서서히 칠 해가다 보면, 당신의 색깔도 분명 선명해져 있을 것이다.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