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서 Dec 27. 2021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만나는 SF문학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을 중심으로

본 원고는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과젠더연구소가 개최한 '제1회 젠더예술제' 평론부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을 정리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Ⅰ. 페미니즘 문학으로서의 SF문학의 전개

 

   SF(Science Fiction)란 ‘과학적 내용과 공상적 줄거리를 테마로 하는 장르’[1]를 뜻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미래의 과학기술이나 근미래사회, 우주 등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SF 장르는 오랜 시간동안 대중들에게 있어서 '남성적'인 장르로 간주되어왔다. 이는 기술이나 과학, 진보와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은 흔히 '남성적인 것'이라는 선입견이 사회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잠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었던 영국의 작가 메리 셸리는 이러한 편견에 맞서 생명과학 기술과 관련한 서사를 다룬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하고, 페미니즘 문학에서는 이것을 여성 SF소설의 원형으로 본다.

    특히, 20세기 중반 영미권에서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어슐러 K. 르 귄 등 남성 필명으로 활동하는 여성 SF 작가들과 도리스 레싱 등 본명으로 활동하는 SF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고,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SF소설이 발전한다. 이러한 작가들은 페미니즘 문학으로서 SF문학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런 활동의 배경에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맥락이 작용했다. 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1]과 1960년대 미국에서의 반전 운동, 신좌파 운동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의 평등이 내포하고 있는 함정에 대해 자각하게 되며 이를 기점으로 여성 고유의 자질과 특성을 중심으로 여성을 ‘차이’로 이해하기 시작했다.[3] 이러한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여성학자들은 문학에서의 페미니즘적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언어심리학자인 제니 울마크(Jenny Wolmark)는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여성작가들은 명백히 남성적인 장르에서 주변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그러한 종속의 경험을 탐구하는 행위에 의해서 남성적 구조와 관계들을 전복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문학에서의 페미니즘 실천을 위해 많은 여성 작가들은 기존에 가장 ‘남성적’인 문학으로 여겨졌던 SF문학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어슐러 K. 르 귄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나는 과학소설이나 판타지, 청소년 문학처럼 무시되고 주변적이었던 장르들을 선택했다.⋯(중략)⋯이러한 장르들이야말로 비평적, 학문적, 적진적 감독(supervision)에서 벗어나 있기에, 예술가를 자유롭게 했기 때문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4] 레이첼 듀플레시스(Rachel DuPlessiss)는 과학소설을 포괄하는 공상소설 장르가 여성 작가에게 제공하는 가능성에 대해 "여성작가의 공상소설에는 침묵당한 집단과 그들의 가치 구조가 지배적으로 등장하며 이 경우에는 최소한 핵가족과 의식에 대한 소설들은 우리 시대에 사회적으로 억압되었던 가치들이⋯(중략)⋯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권력을 획득할 때까지 지배하는 자와 침묵당한 자의 비율을 역전시킨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스트 과학소설의 역사를 복원하는 로빈 로버츠(Robin Roberts)는 여성 과학소설작가의 뿌리를 찾기 위해 19세기의 과학소설부터 시작하여 1920년에서 40년 사이에 등장한 싸구려 잡지 펄프 픽션(pulp fiction)에 나타난 여성 인물들을 분석하여 펄프 픽션에 자주 등장하는 강력한 외계인이라는 여성 인물을 페미니스트들이 전유했다고 주장한다.[5]

    이러한 경향 속에 등장한 여성 작가들의 SF소설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먼저, 이미 인정된 과학적 사실에 근거를 둔 스토리에 기반하는 전통적인 과학소설과 달리, 과학기술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인간 사회를 탐구하는 데 주력한다. 또한, 정확성과 개연성을 중심으로 하는 하드 과학소설 대신 상상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텔레파시나 정신 감응력 등 주변적인 것을 소설의 주요 제재로 이용한다. 그리고, 과학소설의 형식을 전유하여 과학의 편협성을 비판함으로써 '남성/여성', '과학/비과학'의 이분법적 대립에 근거한 근대적 사고의 작동 방식 대신 모든 것을 유기적 전체로 보는 전체론과 다양성, 혹은 유동적 세계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 도달하기도 한다.[6]

    이러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SF 소설가인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대표작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의 사례를 살펴보자.



Ⅱ.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의 사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 1949~1998)는 20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SF소설 작가이다. 본명은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Alice Bradley Sheldon)이고, 군대와 CIA 등 남성 구성원들이 절대 다수를 구성하고 있던 조직에서 근무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과 차별을 받는 삶을 살아왔던 그는 ‘여성 SF작가’라는 이름으로 주목, 혹은 비판받고 싶지 않았기에 필명을 남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1977년에야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7]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The Only Neat Thing to Do)」[8]에는 페미니즘 문학으로서의 SF소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6살 생일선물로 우주선을 받은 여자아이인 ‘코아티’가 우주 항해 과정에서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찾아 떠난다는 것을 기본적인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생물체인 ‘실료빈’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하나의 몸에서 공존하며 함께 여행을 하게 되고, 실종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후 우주의 안전을 위해 실료빈과 함께 우주 한 가운데서 사라지기로 결심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작품에 나타난 페미니즘 문학으로서의 SF적 특성을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코아티’라는 캐릭터의 설정부터 보면, ‘성인 남성’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여타 판타지/SF의 서사와 달리, ‘16세 여자아이’가 서사를 이끌어간다. 부유한 가정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주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설정이 존재하기는 하나, ‘우주연방 지도를 상당히 정확하게 그릴 줄 알고, 변경 기지들을 줄줄이 열거할 수 도 있’(13:9-10)으며, ‘청소년용 우주복을 70초 만에 안전고리까지 다 채워가며 입을 수 있’(14:12-13)을 만큼 우주비행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본인 스스로 많은 준비를 하며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또, 소설 속 주변인물들을 보면, 코아티에 대해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15:29) 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저 애의 말이 곧이 곧대로 믿기지 않는다는 사실도 있고.’(15:30-31), ‘만약 동의했다면, 그 부모야말로 보증된 얼간이들이겠지. 저 애가 내 딸이라면…’(16:2-3)이라고 말하며 여자아이가 혼자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시선에 맞서 여행을 떠난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또한, ‘실료빈’이라는 캐릭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캐릭터는 코아티의 몸 속에서 살며 코아티의 에너지와 발성기관을 이용해 생명을 유지하고 코아티의 여행에 동행한다. 실료빈이 속해있는 ‘이아’라는 생물종들은 인간의 몸 속에서 살며, 코아티와 실료빈의 관계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보니’와 ‘코’(코아티가 찾아 나선 실종된 우주비행사 2명)를 성적인 욕망에 가득차서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설정은 미생물체를 사고체계 속에 주입하여, ‘인간의 몸 속에서 또 다른 개체가 존재하여 인간과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상상과학 영역의 설정을 가져와, 텔레파시나 정신감응력과 유사한 형태의 주변적인 것들을 소설의 주요 제재로 사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코아티와 실료빈은 ‘손에 손을 잡고 낯선 태양의 지옥불 속으로 흔들림 없이 돌진’(106:10-11)하며 우주에서 사라진다. 이 결정이 놀라운 점은, 이 두 아이의 결정에 어느 누구도 개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을 수 없는 광활한 우주에서 자신들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특히, 실료빈의 경우, 작품 속에서 성별에 대한 설정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이씨는 않지만, 코아티의 몸을 빌린 캐릭터이다보니, 여성캐릭터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9] 즉, 이 작품의 결말은 두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여성 중심 서사를 바탕으로 한 SF의 성격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다소 비과학적이지만 자신들의 결정이 전 우주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 코아티와 실료빈의 총체적이고 유기체적인 세계관에서도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또한, 코아티와 실료빈의 우주여행을 통해, 과학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우정’, ‘도전’, ‘모험’, ‘욕망’, ‘죽음’ 등 인간세계에서 인류가 갖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이끌어나간다는 것도 페미니즘 SF의 특성이 나타난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면, 여성 캐릭터가 서사를 이끌어간다는 점, 전통적인 과학소설에 비해 상상과학의 요소를 많이 차용했다는 점, 유기체적인 세계관에 대한 인식과 인간세계에서 있을 법한 고찰을 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고찰을 여성 캐릭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적 SF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Ⅲ. SF문학의 현재와 미래

    SF는 장르의 특성상, 어떠한 사안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논의를 제시하기가 용이한 문학 장르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현실에서는 비논리적이라고 비판을 받는 의견일지라도, SF에서는 작가의 설정에 따라 논리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문학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여성작가들과 페미니즘 문학이 SF소설을 통해 중심부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고, 페미니즘과 관련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으며, 페미니즘 문학으로서의 SF가 발전해 올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페미니즘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마르크스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 자유주의페미니즘 등 여러 갈래로 페미니즘이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SF문학의 이러한 장르적 특징은 페미니즘적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논의를 제시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SF의 특징은 포스트페미니즘과도 연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포스트페미니즘은 과학기술이 과연 21세기 여성에게 해방적 기능을 할 수 있는가, 혹은 여전히 전통적인 젠더 재생산에 그치고 말 것인가를 주요하게 다룬다. 일반적인 과학이나 기술이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되어온 경향을 고려해볼 때 과학기술과 정보화시대의 페미니즘은 보다 근본적으로 과학과 여성의 관계를 탐색하여 이를 재정립하는 작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10] 인공수정을 통해 출산한 아이에 대한 모정, 로봇과 사이보그의 젠더적 속성, 미래사회의 성과 생식에 대한 의미 변화 등 기술발전을 계기로 인류가 마주할 수 있는 현상들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논의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 문학으로서 SF문학의 역할을 인정하는 다양한 움직임들 또한 실제로 존재한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문학적 가치와 페미니즘에서의 역할을 기념하며, 미국의 작가 캐런 조이 파울러와 맷 머피는 ‘제임스 팁트리 상(James Tiptree Jr. Awards)’을 제정하여 매년 성평등과 젠더문제에 관한 문학적 시야를 넓힌 판타지/SF 소설을 선정하여 상을 수여한다. 그리고, SF문학 속에서의 논의는 198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취했던 기술-남성적 특성에 대한 비관적 접근방식과 다르게 ‘디지털 기술과 여성의 삶, 주체성, 행위 등이 긍정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11]고 보는 다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의 “사이보그 페미니즘(Cyborg Feminism)”이나 ‘여성이 기술을 대하는 태도, 기술에 대한 여성의 인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하게 되고, 또한 이것이 여성의 정체성 형성과 어떤 연관을 맺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주디 와츠먼(Judy Wajcman)의 “테크노 페미니즘(Technofeminism)”[12]으로 확장되며, 과학기술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에코 페미니즘”으로 반박되기도 한다. 즉, SF가 다양한 페미니즘에서의 논의에 대한 공론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페미니즘에서 바라보는 과학기술, 그리고 이런 논의의 공론장이 될 페미니즘적 문학으로서의 SF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영화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2] 68혁명으로도 불림. 학내 문제로 시작된 시위가 곧 미국의 베트남 침략과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로, 기성 세대와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혁명으로 발전하였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네이버 지식백과))

[3] 좌종화. (2004). 타자 담론의 여성적 전유: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 과학소설. 영미문학페미니즘 12; 1. 인천: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 205. 

[4한혜정. (2010). 용, 어린이, 여성 : 어슐러 르 귄의 『테하누』의 반가부장주의와 소녀의 변신. 새한영어영문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부산: 새한영어영문학회. 140.

[5] 좌종화. 위의 논문. 207-208.

[6] 좌종화. 위의 논문. 209.

[7]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이수현 역). (2016). 체체파리의 비법. 부산: 도서출판 아작. 저자소개.

[8이 글에 인용된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의 모든 문장은 2016년 이수현/황희선/신혜경 역으로 아작출판사에서 출판된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서 가져온 것이며, 괄호의 숫자는 ‘페이지:줄’ 이다.

[9] 대표적인 예로, 이 작품을 각색하여 2018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국립창극단의 <우주, 소리>(김태형 연출)에서는 여성 배우가 실료빈 캐릭터를 연기한다.

[10] 장정희. (2009). 과학기술 시대의 페미니즘과 사이보그론. 영미문학페미니즘 17; 1. 인천: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 270.

[11이지언. (2012). 과학기술에서 젠더와 몸 정치의 문제 : 다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페미니즘(Cyborg Feminism)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17. 서울: 한국여성철학회. 104.

[12] 주디 와츠먼(박진희, 이연숙 역). (2009). 테크노 페미니즘. 경기: 궁리출판.



작가의 이전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놓친 ‘사람의 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