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좁은 통로도 아닌데”로 시작해서 격앙된 말이 시작되었다. 나는 실수가 잦은 편이고, 내 차보다 큰 차량이라 간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설명하며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러나 정작 진심 어린 사과는 하지 못한 채 오히려 화를 내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넓은 데로 데려가 긁은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냐”는 식으로 말하며 금쪽같은입양아들의 화를 또 다른 화로 받아내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남편은 차를 카니발로 바꾸기 전부터 아반떼N을 사고 싶어 했고, 그래서 카니발이 긁히거나 사고가 나면 아반떼N을 사달라는 말을 늘 입버릇처럼 했다. 이번 일에서도 어김없이 그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잘못했으니 아반떼N을 계약하자는 식으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얼마나 유치한 행동인지 슬슬 머리에 스팀이 오른다.
남자들이 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여자인 나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나에게 차란 단순히 기름만 넣으면 움직이고,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면 그 역할을 다하는 내 일상에 도움을주는 소모품일 뿐이다.
하지만 남편과 늘 ‘차’라는 주제로 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혹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내가 차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묻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베스트프렌드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로 차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점이다.
남편과 차 문제로 다툰 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순간 내가 남편에게서 진짜로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또 남편은 나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했을까 하는 물음에 다다르게 되었다.
난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어떤 말이 우리를 싸움으로 이끌지 않고, 서로에게 이해와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내가 듣고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을 먼저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어떤말이 였을까....
물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그 순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다치지 않고 무사해서 다행이야.” 같은 위로였을 것이다. 사고의 잘잘못을 떠나, 내 마음이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이미 위축되어 있을 때 따뜻하게 건네는 한마디가 필요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왜 조심하지 않았냐”라는 비난보다, “다음에는 같이 더 신경 쓰자”라는 공감의 말을 듣고 싶었을지 모른다. 결국 서로가 원하는 건 정답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불편한 마음을 조금 덜어내 줄 이해와 배려였다.
돌아보면 싸움은 늘 말의 방향에서 비롯된다. 서로가 원하는 말을 미리 알아차리고 먼저 내어놓았다면, 분노는 대화로, 불만은 위로로 바뀌었을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변명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다짐한다. 내가 먼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남편에게도 “괜찮아, 실수는 누구나 해”라는 마음으로 다가가자고. 그렇게 말의 온도를 낮출 수 있다면, 우리 사이의 싸움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